
[정보통신신문=최아름기자]
패션용어 중에 티피오(TPO)라는 말이 있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옷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말’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원칙 같다.
왜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말이다.
특히 한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적절한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싶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정부부처 주최의 한 박람회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박람회의 주최측인 정부부처 차관이 산하 공기업 및 민간 기업 수장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전 정부 성향의 한 기관장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원래 장관이 자리해야 했으나, ‘은둔형’인 해당 장관은 행사마다 두 차관을 번갈아 보내고 있고, 이날도 그러한 행사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해당 공기업 대표는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공식 임기를 꽉 채우며 자리를 지켰고, 새 사장 인선을 앞에 놓고 연임 중인 상황이었다. 분노의 도화선은, 새 사장으로 거론되는 인사 역시 야당 성향의 인사라는 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업 대표들은 사색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소동’의 여파로, 이날 계획됐던 박람회 내 부대행사들은 유야무야 끝나버렸다.
이날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한 한 대표는 문제의 자리에 본인도 있었다며, 무슨 정신으로 발표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녁 6시까지 열리기로 했던 이 세미나 역시, 대표의 발표를 끝으로 11시도 안 돼 끝나버렸다.
관람객들에 이러한 소식이 알려졌을 리 만무한데도,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하듯 행사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공기업은 정부 출자 기업인 만큼,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친정부 인사의 대표 선임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한데 야당 인사가 알아서 사퇴해주기는커녕, 임기를 꽉 채우고 차기 사장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현 정권으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백보 양보한다손 쳐도, 표현의 타이밍과 상황 선택에는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 해당 산업의 현재 및 미래를 조망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중소 기업들이 자사의 홍보와 비즈니스를 위해 거금을 투자하고 참여한 중요한 자리였다.
주최 부처 차관이 부스를 돌며 독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부대행사가 취소될 정도로 깽판을 놓았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나름대로는 그럴 수밖에 ‘사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의 차관으로서 언행의 중요성 및 영향력을 좀더 인지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