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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땅에 한국인의 혼을 심다
열사의 땅에 한국인의 혼을 심다
  • 한국정보통신
  • 승인 2005.01.03 11:03
  • 호수 1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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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신화의 주역 '통사회'
70∼80년대 사우디 통신망 구축 '일등공신'
불굴의 의지로 대형 프로젝트 성공적 수행



70∼80년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중동 특수'를 기억하는지.

지난 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며 시작된 중동 진출 붐은 한국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열사의 땅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로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때 획득한 외화가 73, 79년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극복하는데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당시 현지에 파견된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말그대로 '글로벌 전사(戰士)' 였다. 그들은 50도를 오르내리는 금녀(禁女)·금주(禁酒)의 땅에서 뜨거운 모래바람과 싸우면서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날에도 현지의 국가기간시설에는 우리나라 기술자들의 피와 땀, 고난의 편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국가의 신경망격인 통신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중동 국가의 통신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모래 사막을 종횡무진 누비며 통신선을 묻었던 우리 기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중동국가들은 오늘날처럼 자유롭게 통신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90년 발족…동아건설 멤버가 주축

그렇다면 당시의 '글로벌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중동신화의 뒤안길로 몸을 숨겼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역전의 전사들은 죽지 않았으며 노병처럼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중동국가에서 떨쳤던 통신인의 혼을 우리나라 정보통신인프라 구축 현장에서 다시 금 불태우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IT 강국으로 성장하는데 뼈대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젊음의 한복판을 관통했던 열정의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 때 함께 맞잡았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중동 통신망 건설의 한 축을 이뤘던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글로벌 전사들이 함께 모여 모임을 만들었다.

중동 신화의 주역이었던 동아건설 멤버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태동했다. 모임의 이름은 '통신'과 사우디의 '모래(沙)'를 합쳐서 '통사회(通沙會)'로 지었다.

통사회가 공식 발족한 것은 지난 90년, 국내기업의 중동진출이 거의 마무리되고 우리 나라 의 초고속정보통신망이 싹을 틔우던 시기였다.

통사회는 동아건설의 통신분야 관리직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오늘날 정보통신업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눈에 띈다.

현 회장을 맞고 있는 함정기 벨코리아(주) 대표(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이사)를 비롯, 윤상선 초대 회장(현 고문), 황상구 유신정보통신(주) 대표(정보통신공제조합 제 7대 이사장), 이강록 (주)우호텔레콤 대표 등 약 70명의 회원들이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 발전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한국 근로자 연평균 6000명 투입

통사회 회원들이 사우디에서 본격 진출한 것은 지난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TEP(Telephone Extensive Plan) 프로젝트'에 동아건설이 참여하면서부터 이들도 열사의 땅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사우디의 국가 통신망 구축을 골자로 하는 TEP 프로젝트는 총 공사비가 13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사업이었다. 특히 이 사업은 기간통신망 포설 및 전화국 건설, 가입자 선로 구축을 망라하는, 단일공사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에 따라 TEP 프로젝트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관심은 각별했다. 더욱이 기존 국책사업의 경우 큰 이익을 내기가 힘들었지만 통신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사우디 정부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 만큼 TEP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우리 근로자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82년 TEP 프로젝트가 최종 완료될 때까지 사우디에 파견된 우리나라 통신 근로자는 연평균 6000여명에 이른다. 통사회에서는 77년부터 82년까지 약 6년간 연인원 2만6000여 명이 TEP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얼마 못가 손뗄 것" 폄하도

TEP 프로젝트는 주요 공정별로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가장 핵심이 된 것은 기간통신망을 포설하는 프라이머리(Primary)사업이었고 여기에는 국단위 시내선로(기간망∼가입자망)를 구축하는 세컨더리(Secondary) 사업이 뒤따랐다.

아울러 통신 가입자의 댁내망을 구축하는 파트 쓰리(Part 3)사업도 전체 프로젝트의 한 부분을 구성했다.

당시 TEP 프로젝트의 원청 사업자는 세계적 통신기업으로 이름을 떨치던 필립스와 에릭슨 컨소시엄이었다. 동아건설은 통신망 구축 분야의 전문 시공업체로 TEP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에 총본부를 두는 한편 젯다 등 주요 도시에 출장소를 개설했다. 모든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고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사업초기 동아건설에 대한 서방 기업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시절이었고 동아건설도 통신분야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동아건설의 사업 수행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얼마 못 가서 TEP 프로젝트에서 손떼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군인"

하지만 당시 사우디에 파견된 우리 기술자들은 모두 정예 멤버로 구성돼 있었다. 체신부의 통신선로 구축 담당자를 비롯, 한국전력과 철도청 등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지식과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었다.

이러한 우수 기술력을 지렛대 삼아 우리 근로자들은 맡은 공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수행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특히 당시 우리 근로자들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현지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와 눈을 뜰 수 없도록 심하게 부는 모래바람 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주어진 목표치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일과 후 작업을 밥먹듯 하고 한 달을 기준으로 2번만 휴무일을 갖는 한국인들의 집념은 현지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에 온 한국인들은 모두 군인(Army)"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아침 6시 30분이면 정확히 조회를 갖고 7시에는 모두 현장에 투입되는 일사불란함이 현지인들의 '생뚱맞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TEP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750 케비넷 개통 작업'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하기 위해 '100일 작전'을 수립, 밤낮없이 작업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서방 기술자들도 모두 혀를 내둘렀다.



첨단 공법 적용…철처한 공정관리

또 하나 TEP 프로젝트의 중요한 특징은 모든 공정에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매 공정마다 철처한 검사가 뒤따랐기 때문에 대충대충 작업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당시 현장 관리자들은 모든 공정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주요 작업요소를 체계적으로 관리·점검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체계적인 공정관리는 근로자 개개인의 굳은 의지와 맞물려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아울러 작업이 모두 끝나고 나면 관리자들은 현장 근로자들과의 일대일 면담을 통해 현장에서 겪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타향살이의 아픔을 서로 보듬고 어루만지는데 앞장섰다. 대규모 인원이 투입됐음에도 큰 안전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효율적 인력관리 덕분이었다.

기술자 입장에서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게 큰 매력이었다. 당시 현장 근로자의 한달 급여가 국내 중견 공무원의 4배에 달했으니 기술자들에게 사우디는 분명히 기회의 땅이었다. 더욱이 작업 구간(분량)에 따라 급여를 산정하는 일종의 성과급여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근로자들의 근무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현지 동화 위해 다각적인 노력

하지만 물설고 낯선 이억만리 타국에서 일에만 매달려야 했던 근로자들에겐 뼈를 깎는 인내가 필요했다.

특히 어깨 위로 쏟아지던 사우디의 태양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내륙 지역의 경우 온도는 높고 습도는 낮다보니 10분만 작업을 해도 땀이 이내 말라버려 등 언저리엔 하얀 소금이 맺혔다.

생소하기만 했던 언어와 종교도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넘어야할 큰 산이었다. 사업 초기엔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현장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을수록 우리 근로자들은 현지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일부 근로자들은 종교를 생활화하는 현지인들과 동화할 생각으로 이슬람 교리를 익히고 성지 순례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함정기 통사회 회장은 "가족과 국가를 살려야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고난의 세월을 견뎠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당시의 노력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근대화에 밑거름이 되는 등 값진 결실을 거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내쉬는 거친 숨소리처럼 들렸다.


이민규 기자 fatah@koit.co.kr




※중동-아랍-이슬람의 차이

종교·문화적으로 보면 중동은 매우 낯선 곳이다. 특히 엇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중동과 아랍, 이슬람 세계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아랍세계란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아랍연맹에 속해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22개국이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언어적, 정치적으로 결속돼 있다.

이에 반해 중동이란 유럽중심의 시각에서 정해진 지정학적 개념으로 1902년 미 해군제독 알프레드 마한이 페르시아만 주변 지역을 처음으로 중동이라 칭한데서 비롯됐다.

또 이슬람세계란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와 무슬림(이슬람 교도)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집합을 의미한다. 현재 이슬람 기구 소속 56개 국가 약 13억 인구가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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