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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힘과 KAIST 개혁의 타당성
경쟁의 힘과 KAIST 개혁의 타당성
  • 정보통신신문
  • 승인 2011.04.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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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본지 발행인·공학박사

최근 우리 사회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산실이며, 미래 엘리트의 양성소로 불리는 KAIST에서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성적에 대한 극심한 부담에 시달렸고, 교수는 연구실 운영비 중 일부를 개인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되면서 몹시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의 이유는 다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잇달아 삶을 포기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성인들의 연이은 자살이 불러 온 충격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KAIST 사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그릇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더욱이 사회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잇단 자살을 과도한 경쟁시스템의 폐해로 몰고 가 서남표 KAIST 총장 퇴진운동으로까지 연결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생들의 자살은 대학 구성원에 대한 면밀한 관리가 미흡했던 것에서 비롯된 문제이지, 경쟁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승자가 아니면 모두 패자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도록 학생들을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한 게 문제였지, 서남표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 자체에는 큰 하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서 총장은 미국에서 50년 이상 살면서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저명한 학자의 반열 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MIT대 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KAIST 총장에 부임한 후 경쟁시스템의 효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고강도 개혁을 추진했다. 10년 안에 MIT를 따라잡는다는 야심찬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 같은 고강도 개혁의 결실로 KAIST는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으로 발돋움했고, 최근에는 50위권을 내다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떤 조직이든 일정 수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대학도 경쟁시스템의 효율성을 자양분으로 발전한다는 점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교육계와 재계의 다수 전문가들도 대학 경쟁의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학점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대학의 핵심이자 기본이다. 개혁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서 전체가 잘못됐다고 몰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10년간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윤종용 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또한 “이공계 학생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조장희 가천의과학대학교 뇌과학연구소장은 지난 14일 개최된 ‘미래인재포럼’에서 KAIST 학생들의 자살사건과 관련, “사회 컨트롤이 잘못된 것이지 학교 운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며 “개혁을 멈추는 것은 좋지 않다. 좀 더 개혁하고 보완해 오히려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KAIST 학생들도 치열한 경쟁시스템이 자신들을 힘들게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KAIST 학부 총학생회가 지난 13일 비상총회 투표에서 서 총장의 경쟁 위주 제도 개혁을 실패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안건을 부결시킨 게 이를 입증한다. 일부 세력의 편향된 인식과는 달리 KAIST 학생들이 경쟁에 대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수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공감을 표한 것처럼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대학치고 경쟁을 소홀히 하는 대학은 없다. 세계 일류대학 가운데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 경고와 같은 채찍을 가하지 않는 대학은 매우 드물고 교육 강도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그동안 국내 대학이 세계 일류대학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은 경쟁을 요체로 한 개혁을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수한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앞 다퉈 개발하며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대학이야말로 ‘서바이벌 경쟁’이 펼쳐지는 전쟁터다.

국내 대학들이 실력 없는 학생들을 쏟아내는 종전의 교육을 답습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경쟁은 인류의 역사를 진화시켜 온 성장엔진이다. 더욱 발전된 경제와 사회를 지향한다면 경쟁은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다. 글로벌 무대로의 도약을 꿈꾸는 대학과 기업이라면 경쟁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이분법적 경쟁이 아니라 ‘합리적 룰’에 따라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근래 KAIST 구성원 모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KAIST 교수와 학생들 가슴 속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도약의 길을 모색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개혁의 전면에 선 서남표 총장의 어깨에 큰 힘을 실어줘야 한다.

봄의 한복판, KAIST 교정에 부는 봄바람이 싱그러울 것이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KAIST의 힘찬 패기와 지성의 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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