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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停電) 사태와 한국병
정전(停電) 사태와 한국병
  • 정보통신신문
  • 승인 2011.09.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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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본지 객원논설위원

기억상실증은 흔히 큰 충격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얼마 전 TV에서 한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여 겨우 목숨은 구했으나 기억상실증으로 보호자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영됐었다.
사고 차량은 뺑소니쳐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 TV를 보고 부모가 나타났지만 병상의 아들은 부모를 알아보지 못해 모두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래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식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모든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충격이 안겨준 창창한 젊은이의 불행-사실 그 청년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우리국민은 심한 건망증을 앓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악명 높은 와우(臥牛)아파트 붕괴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와우아파트는 70년 4월8일 새벽 6시 40분 갑자기 5층 건물 한 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인데 33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19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를 빚었었다.
결국 사고의 책임을 지고 ‘불도저시장’으로 이름난 金玄玉서울 시장이 물러나야 했었다.
문제의 아파트부지는 경사 70도가 넘는 산중턱에 2m도 안 되는 기초공사, 그것도 썩은 황토 흙으로 골짜기를 메운 곳에 기둥을 박아 하중을 이기지 못해 폭삭 내려앉은 것이다. 그때도 온통 날림공사를 규탄하고 공사를 서두르는 우리의 성급함을 반성했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도 했었다.
언론도 그랬고 국회서도 그랬으며 정부도 그랬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그 다짐은 망각되고 곧이어 독립기념관 화재사고와 같은 사태를 가져왔다.
그리고 와우아파트 사건이 발생한지 2년도 못된 1971년 12월 25일 서울 大然閣 호텔화재사건이 터졌었다.
그것도 소방시설의 무방비로 발생한 화재사건이었다.
21층 모두를 다 태워버린 이 화재는 1백 57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고 64명에 중경상을 입혔다.
고가 사다리라는 것은 6층까지만 작동할 수 있었고 헬리콥터로 인명구조를 했으나 줄에 매달렸다 떨어져 죽는 등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때 11층에 투숙했다가 죽음을 당한 대만의 한 외교관은 너무도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하여 ‘11층, 그 사람’이라는 노래까지 나와 유행됐었다. 그때도 허술한 화재방비를 개탄하고 대형화재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 끔찍한 대형사건 들이 계속됐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토록 과거를 망각하는데 익숙한 민족일까?
너무 많은 충격 속에서 살아온 때문일까, 아니면 조급하게 서두르는 속성 때문일까.
우리는 83년 9월 1일의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항공기 참사 사건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소련미그23기가 민간 항공기임을 알고도 우리 보잉 747에 미사일을 발사, 269명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숨졌다는 비보를 듣고 얼마나 우리는 분노하며 약소국의 서러움을 되씹었던가.
그러나 그 엄청난 사고도 불과 한 달 후, 10월 9일 발생한 ‘아웅산’ 참사 사건의 충격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충격의 상처가 아물기 도전에 또 다른 충격이 강타하는 우리의 과거 역사, 그래서 우리는 망각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이 83년 9월 1일 의 KAL기 피격사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심층 보도하여 주목을 끌었다. 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KAL기를 미정찰기로 오인한 것이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한 것도 아니며 프로그램 실수로 항로를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기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국이나 일본 언론에서 여러 차례 KAL기 피격사건을 다루어 왔었다.
참으로 망각할 줄 모르는 얄미운 미국·일본의 언론들이다.
그들은 무엇이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데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사건을 추적하려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것 아닌가.
KAL기 폭파사건, 아웅 산 테러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최근의 천안함 폭파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 속에 우리는 지난 9월 15일 또 한번 대형사건을 경험했다. 전국적인 정전 사고가 그것이다.
전국이 암흑천지로 변하고 모든 시설이 멈추어 버리는 블랙아웃(black out)사태가 올 뻔한 이번 정전은 우리나라가 10대 경제대국이니 IT강국이니 하는 찬사가 얼마나 민망스런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엉망으로 위기관리능력이 없는 정부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병원시설이 마비되고, 승강기에 갇히고, 교통신호등이 먹통이 돼 도로가 엉망이 되고, 중소기업의 가동이 멈추고, TV, 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이 멈추어 버린 9월 15일.
그러고도 우리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이 들끓고 대통령까지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분노, 이런 사후약방문도 곧 망각해 버리는 한국병이다.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인데’ 하고 다짐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이다.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 는 식으로. 슬픈 일이다.
고대 신화에 ‘레테’강이란 게 있다. 누구나 이 강을 건너기만 하면 슬픔도, 아픔도 모두를 망각하게 하는 마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망각의 강’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을까 불행하게 했을까.
지금도 그 강은 흐르는가. 괴로운 건 잊어버리게 하고 즐거운 건 회생시켜주는 강.
우리 제발 망각 잘 하는 한국병을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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