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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쩐(錢)의 전쟁’…철새 가입자 양산
과도한 ‘쩐(錢)의 전쟁’…철새 가입자 양산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1.10.07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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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유선통신시장 편법·불법 마케팅

▲ 딜러들의 불법 마케팅 루트가 다양해지고 있다.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에 ‘초고속인터넷 현금’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할 경우 무수히 많은 영업 사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일선 딜러 관리·감독 미흡…고객 쟁탈전 가열
국가적 자원낭비 인식…정부차원 대책 세워야


서울 강북구에 사는 가정주부 김 모씨는 최근 초고속인터넷 대리점의 영업사원(딜러)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A사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B사의 서비스로 바꾸면 30만 원의 현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더 솔깃한 제안도 받았다. 영업사원은 초고속인터넷 외에 집에서 쓰는 음성전화를 B사로 옮기고, IPTV서비스에 신규로 가입하면 20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잠시 고민했지만 초고속인터넷 업체를 B사로 바꿨다. 입금 받을 계좌번호까지 영업사원에게 알려줬다.

하지만 김 씨는 요즘 또 다른 속병을 앓고 있다. 당초 약속한 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연락했던 영업사원을 찾았지만 “일을 그만뒀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금 지급 건에 대해 문의하자 해당 영업사원이 개인적으로 약속한 것이지, 대리점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편법·불법 마케팅의 핵심 =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현금 마케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른 바 ‘쩐(錢)의 전쟁’이다.

과열경쟁의 본질은 유선시장의 포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초고속인터넷서비스가 보급되다보니,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속도 경쟁’이 쉽지 않은 것도 ‘쩐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초고속인터넷 최고 전송속도가 100Mbps에 이른 상황에서 각 통신사업자는 자사 서비스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신사업자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고객을 유치하는 편법·불법 마케팅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물론 통신사업자들은 “본사 차원에서 현금 등을 동원한 편법·불법 마케팅을 지시한 일이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중간유통망(고객센터)이나 하부유통망(개별영업점 또는 딜러)의 현금 마케팅을 묵인하거나 편법·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등한 시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각 통신사업자들은 일선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사의 편법·불법행위를 제재하기 보다는 경쟁사의 부당행위를 견제하는데 더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2월 SK브로드밴드는 경쟁사인 KT의 출혈마케팅 등을 문제 삼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KT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으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곳은 바로 SK브로드밴드”이라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더해 KT는 경쟁사에 창을 겨눴다. 후발사업자인 LG유플러스(당시 LG텔레콤)가 불법행위를 했다며 방통위에 신고한 것이다. LG텔레콤이 과다한 현금 및 경품을 제공하는 등 시장과열을 주도했다는 게 신고의 이유였다.

‘딜러’ 활동 실태 = 이 같은 편법·불법행위의 끝단엔 ‘딜러’라고 불리는 하부유통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다. 최일선에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모집해 상위 유통단계의 사업자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딜러’의 시장진입은 까다롭지 않다. 각 유통점에서는 특별한 자격요건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가입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느냐를 능력의 척도로 삼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통신분야의 다른 사업을 영위하면서 딜러를 겸업하거나, 다른 업종의 직장에 다니면서 딜러로 활동하는 이른바 ‘투 잡(two job)’족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최근 ‘투 잡’ 딜러들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대리점·딜러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보니 일부 시간만을 영업에 할애하는 ‘투 잡’ 스타일로는 적정 수익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딜러들은 어떻게 수익을 얻게 되는 것일까.
수수료 지급방식은 통신사업자와 대리점마다 차이가 있지만, 딜러들은 보통 상위 사업자가 지급하는 개통 수당의 일부를 수익으로 얻는다.

즉, 상위 사업자들은 상품에 따라 10만∼50만 원대의 개통수당을 지급하게 된다.
초고속인터넷을 단품으로 파는 경우 10만 원대의 수당을 지급하고, 집 전화나 IPTV를 묶어서 판매하는 결합상품에 대해서는 그 내역에 따라 추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딜러들은 이 수당에서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고, 그 차액을 자신의 수익으로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초고속인터넷 가입 시 지급한다는 현금은 개통수당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돈을 줄 것인가는 보통 영업점에서 정하며,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딜러들이 임의로 약정하기도 한다.

딜러들의 영업 루트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은 전화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텔레마케팅이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 ‘초고속인터넷 현금’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할 경우, 무수히 많은 일선 영업 대리점과 딜러들이 개설한 영업 사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회사 상품 팔면서 문제 키워 = 일선 하부 유통망에서 특정업체의 상품만 취급하지 않고, 여러 업체의 상품을 한 번에 판매하는 방식은 과열 마케팅의 폐해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대다수 개별영업점이나 딜러들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U+)의 상품을 모두 판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기별로 개통 수수료나 인센티브를 많이 주고 요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통신업체의 상품을 잠재고객에게 권하며, 가입자를 유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즉, 한 사람의 가입자라도 더 유치해야만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딜러 입장에서는 기존 초고속인터넷서비스 등을 해지한 후 다른 회사의 상품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딜러들은 현금을 지급하는 등의 편법·불법 마케팅을 동원하게 된다. 이는 상위 사업자로부터 내려오는 가입자 유치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다.

서울 은평구에서 통신상품 딜러로 활동하고 있는 B모씨는 “딜러에게 할당량이 주어지는데 제대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기존에 받았던 수수료를 차감하는 형식으로 제재가 주어진다”면서 “차감을 많이 받아서 수익이 적은 경우 일을 그만두고 다른 대리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선 영업점에서 딜러들에게 제시하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유치 목표는 월 50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딜러들은 이 같은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현금 등의 경품을 제공해서라도 가입자 수를 늘리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딜러들은 이런 현금 마케팅이 자신의 영업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상도의를 무시한 딜러들의 현금 마케팅은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니는 ‘철새 가입자’를 양산하면서 통신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특정 업체의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하는 우수 고객들이 보이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새 가입자’들이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업체를 옮길 때 받는 현금이 근원적으로 우수 고객들이 다달이 내는 통신요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업체를 바꾸며 현금을 받는 것은 타인의 금품을 훔치는 것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유출 등 부작용 속출 = 과열 마케팅의 또 다른 폐해로 볼 수 있는 게 초고속인터넷가입자 개인정보의 불법유통이다.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대리점들이 통신사업자 3사의 기존 가입자 데이터베이스(DB)를 갖고 있으며, 일선 딜러들은 이 DB를 토대로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법적 정보유통과 과열 마케팅은 송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종전 하나로텔레콤)는 2006~2007년 자사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가입자 50여만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 주소, 사용요금 등의 정보를 텔레마케팅 업체인 Y사에 제공했다. 이 자료에 포함된 가입자 중 2만여 명은 개인정보 도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최근 “개인 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는 각 20만원을, 동의는 했으나 그 범위를 넘어 정보를 제공한 경우에는 각 1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밖에 딜러들이 현금 지급 등의 경품을 내걸고 고객을 유인한 후, 당초 약속한 돈을 주지않고 잠적함으로써 민원을 초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관리·감독 실효성 높여야 = 이처럼 과열마케팅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통신 3사 매출액 대비 마케팅 비용을 22%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통신업계 최고경영자들도 현금마케팅 자제를 다짐하는 등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도, 통신사업자들도 일선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편법 마케팅을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통신사업자들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하부 유통망의 현금 지급 등을 통한 불법 마케팅을 철저히 관리·감독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방관하거나 묵과하는 경우가 많다.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하부 유통망을 일일이 관리·감독하는데 한계가 있는데다, 딜러 등 일선 영업점에서 자사의 매출목표를 상당부분 채워주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통신사업자들은 과도한 가입자 유치목표를 설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부 유통망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은 LG U+의 경우 전남·광주지역 초고속인터넷 대리점들에게 월평균 초고속인터넷 300건~1000건, 인터넷전화 150건~500건 등의 가입자 유치목표를 설정했다.

아울러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거나 개통, A/S 등의 역무권역을 변경한다는 이행확약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금 등을 이용한 고객 빼앗기는 국가적 자원낭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불법 편법마케팅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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