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2:08 (목)
정보통신설계는 정보통신기술자에게
정보통신설계는 정보통신기술자에게
  • 정보통신신문
  • 승인 2012.07.06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종 정보통신기술사·수필가

인생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가난은 최대의 폭력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먹거리 창출은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격증 취득의 목표가 거창한 호사를 누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사회적 혜택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한 분야의 전문가(professional engineer)로서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고, 그에 상응하는 적정한 보수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보통신기술자는 소작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어진 권리 주장도 떳떳하게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처지이다. 세상은 온통 정보통신의 세상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정작 통신기술자는 대우받지 못하고 왜 형편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잘못된 법 때문이다. 특히나 정보통신설계부문에서 그 불합리한 법은 정점을 이룬다.

정보통신설계분야는 크게 보아 ‘건물 내 통신설계’와 ‘건물 외 통신설계’가 있다. ‘건물 외 통신설계’는 대부분이 통신 인프라구축 설계로 기간통신사업자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하여 설계, 감리를 자체 내에서 처리하고 외주를 주지 않는 불법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설계-시공-감리 분리발주 원칙’에 어긋나는 불법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어도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이가 없다. 거대 공룡 회사인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정보통신시장의 가장 불편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이로써 자신들의 잇속은 채울지 모르겠으나 수많이 배출된 정보통신 인력들은 오늘도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건물 내 통신설계’는 우리 정보통신기술자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가.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다.

왜 ‘건물 내 통신설계’를 정보통신기술자가 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무얼까. 공교롭게도 그것은 우리의 법, 정보통신공사업법 때문이다. 제 발등 찍는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 짝으로 우리가 만든 법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제 밥그릇을 차버리고 말았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보통신공사업법 2조 8] "설계"란 공사(「건축사법」 제4조에 따른 건축물의 건축 등은 제외한다)에 관한 계획서, 설계도면, 시방서(示方書), 공사비명세서, 기술계산서 및 이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 주범은 정보통신공사업법 2조 8항에서 10항까지 언급한 ‘건축물 제외’ 내용이다. 건축물에서의 설계를 제외함으로써 정보통신기술자가 건축물 내 설계를 못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 괄호 조항을 삭제하려고 그간 우리 선배 제위들이 법안개정에 부단히 노력 추진하였으나 정보통신설계로 재미를 보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밀려 번번이 입법이 무산되고 있다.

시대는 바야흐로 건축물이 통신과의 융합으로 지능을 겸비한 똑똑한 건물(intelligent building)이 되어가고 있다. 곳곳에 초고층건물은 도심지의 랜드마크가 되어 지역의 상징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고, 이러한 건물은 고도의 정교한 정보통신설계가 요구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기술자가 설계하지 못하고 건축사만이 설계할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명시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건축사는 정보통신설계능력이 없는 까닭에 설계능력을 갖춘 통신용역업체에 하도급을 주어야 한다. 정보통신설계인데도 불구하고 원도급이 아니라 하도급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러면 건축사는 정보통신설계업자에게 하도를 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정보통신업자는 하도급의 재하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왜일까. 건축사로서는 전기, 통신, 소방을 일괄적으로 위탁하기를 원하지 개별업체를 상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엉뚱하게도 그 수혜를 전기기술사가 얻고 있다.

통신과 달리 전기는 법적으로 전기기술사만이 설계할 수 있다. 그들은 법의 보호 아래 있기에 전기설계업만으로 사업유지가 가능하고 또 이왕지사 유사업종인 통신까지 겸하여 업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신설계업 설립은 너무 쉽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법에 의하여 정보통신기술자 3명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으니 학경력제에 따라 넘쳐나는 통신기술자를 채용하여 통신설계를 겸하게 되는 것이다.

설립 요건이 이렇게 느슨하다 보니 통신설계용역회사는 페이퍼컴퍼니가 절반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이다. 학경력제에 따른 통신기술자범위를 보면 더 가관이다. 인근 학과뿐 아니라 심지어 토목자격증도 통신기술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건물 내 통신설계는 전기기술자가 주체가 되고 통신은 전기의 곁다리 설계밖에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통신은 이제 ‘약전’이란 이름으로 전기에 한 분야처럼 편입되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설계가 이러하니 공사는 물론 감리에 이르기까지 점점 전기에 편입되어 발주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약전이라는 용어는 순전히 전기적인 관점에서의 용어이다. 한탄할 노릇이다. 이제는 더 나아가 우리 법(정보통신공사업법)을 개정하려 해도 자기네들의 업역이라며 100만 전기인 운운 하며 개정반대를 하고 있다.

웃긴 것은 전기설계협의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전기와 통신은 원래부터 전자기학을 기반으로 같은 뿌리이므로 통신과 전기의 통합을 주장하면서 정보통신공사업법 개정 논의 과정에 적극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의견 개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나는 그 말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대환영이다. 다만 그의 논리대로 통신과 전기가 같다면 정보통신자격자에게도 전기설계, 전기감리, 전기시공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 묻고 싶다. 오늘날 세계 일등 정보통신국가를 만든 이가 전기기술자들이었냐고. 건물 내에 전화설비, TV설비, CCTV, 방송설비, 홈네트워크, 인터넷설비, 이동통신 등이 진정 전기 분야의 일부분이냐고.

이러한 상황은 법정비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이다. 솔직히 우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전기의 경우는 법정비가 잘 갖추어져 통신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전력기술관리법에 따라 전기설계는 전기관련기술사가 하도록 명확히 규정해놓았기에 건축물 내든 건축물 외든 전기는 모두 전기기술사만이 설계하게 되어있으니 잘 보호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말이다. 하루빨리 정보통신공사업법 개정 및 정보통신기술관리법을 만들어야 할 일이다.

설계가 바로 서지 않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정보통신공사가 발주될 것인가. 정보통신설비가 전기설비로 둔갑하는 예는 현장에서 다반사다. 또 저급한 기술자가 잘못된 정보통신설계로 인하여 건물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나는 진정 바란다. 통신이 더 이상 약전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정보통신기술자들이 소작농에서 벗어나 자작농을 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기를.

정의란 무엇인가. 남의 밥그릇을 빼앗아 내 것인 양 취하는 게 정의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통신인의 권익을 넘어 이 사회의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슬로건처

 
럼 ‘정보통신설계는 정보통신기술자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간절히 기도하듯 주장하는 바이다.

* 본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인터넷 신문 등록 사항] 명칭 : ㈜한국정보통신신문사
  • 등록번호 : 서울 아04447
  • 등록일자 : 2017-04-06
  • 제호 : 정보통신신문
  • 대표이사·발행인 : 함정기
  • 편집인 : 이민규
  • 편집국장 : 박남수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308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정보통신신문사
  • 발행일자 : 2024-04-18
  • 대표전화 : 02-597-8140
  • 팩스 : 02-597-822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민규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1864
  • 통신판매업등록번호 : 제 2019-서울용산-0472호
  • 정보통신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1-2024 정보통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oit.co.kr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신문위원회 abc협회 인증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