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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입찰의 덫…시공업체 동반부실 우려
저가입찰의 덫…시공업체 동반부실 우려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3.09.1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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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낙찰하한선 이하 투찰자 배제 등 보완책 강구해야”

대다수 중소업체 불가피한 선택으로 치부
각종 부작용 초래…결국 시장생태계 교란

건설시장 침체의 골이 매우 깊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수주액은 7년 내 가장 낮은 101조5000억 원을 기록했다. 건설시장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진입하기 전인 2007년의 건설수주액이 127조900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6조4000억 원이 줄었다.
올해 전망은 더 어둡다. 금년 건설수주액 예상치는 98조7000억 원으로 8년 만에 100조 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시장규모와 업체 수의 불균형

극심한 시장침체는 시공업체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많은 업체들이 일감부족을 호소하며 경영위기에 내몰린다. 종합건설업체는 물론 대다수 정보통신공사업체, 전기공사업체 등도 경영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공업체의 일감부족은 공사를 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인데, 이는 시장규모와 업체 수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시장의 파이는 그대로 이거나 오히려 작아졌는데 파이를 달라고 내미는 손은 부지기수이니 먹을 게 없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정보통신·전기공사업, 소방시설공사 등을 망라해 작년에 공사실적이 있는 업체 수는 총 6만5251개다.

2011년도 6만5469개와 비교하면 218개 감소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줄곧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 통계상 건설업체가 감소한 것은 1987년(-0.1%) 이후 25년 만이다.

정보통신공사업의 경우 등록업체 수의 급속한 증가에 쉼표가 없다. 
연기업체 수를 기준으로 지난 2009년 5787개였던 정보통신공사업 등록업체는 2010년 6069개, 2011년 6245개로 늘었다. 작년에도 6400개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갔다.

연기업체 수는 건설업종 단위로 집계한 기업체수로, 한 개 기업이 여러 업종에 등록할 수 있다.
올해 들어서도 정보통신공사업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에 따르면 9월 10일을 기준으로 7841개사가 정보통신공사업에 등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뿌리치기 어려운 저가입찰의 유혹

업체 수가 많아질수록 공사수주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공사실적과 업체 수 사이의 미묘한 함수를 풀기 위한 해법이 필요한데, 시장파이가 획기적으로 커지지 않는 이상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공업체들은 저가입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경영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공업체 입장에서 보면 저가입찰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투찰가격이 낙찰자 선정의 결정적 잣대가 될 때 중소 시공업체는 저가입찰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게 뼈아픈 현실이다.

저가입찰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저가입찰의 발생원인과 그 부작용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해 왔다.

일례로 LG경제연구원은 지난 2001년 발간한 ‘건설 입찰 및 낙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최저가낙찰제 하에서는 수주가격이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을 포함하는 총공사비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제조업의 평균 가변비용에 해당하는 직접공사비를 상회할 경우에는 수주유인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부실건설업체는 고정비용은 고사하고 가변비용 정도만 건질 수 있으면 눈앞의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덤핑입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느 전문가도 저가입찰을 지양하고 경쟁의 틀을 정비할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저가입찰은 건전한 시장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주범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덤핑낙찰에 따른 부실시공과 저가하도급으로 인한 하도급업체의 경영악화 등 부작용을 감안할 땐 더욱 그러하다.

특히 더욱이 덤핑낙찰 관행이 지속될 경우 경쟁력 있는 업체도 동반부실에 빠져 업계 전반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입찰제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가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결국 시공업체 수와 시장규모 사이에 놓인 간극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저가낙찰제는 업체 간 기술·가격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현 시장상황을 보면 이 같은 기본취지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무분별한 가격경쟁에 따른 갖가지 폐해만을 낳고 있다.

특히 직접공사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한 경우 시공업체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설계변경을 통해 계약금액을 높이거나 하도급자 및 자재공급자에게 손실비용을 전가하는 식의 꼼수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최저가낙찰제 근본적 수술 필요

이 같은 저가입찰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현행 최저가낙찰제에 대한 근본적 수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저가낙찰의 발생 매커니즘 및 방지 대책’ 보고서에서 “공공공사 입찰에서 예정가격 작성 시 실적단가 적용,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실행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저가낙찰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가격만을 평가하는 최저가낙찰제는 조속히 폐지하고 실행원가 이하의 낙찰을 유발하는 공공공사 입찰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연구위원은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저가 투찰은 합리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후생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저가투찰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최 연구위원은 사회후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비합리적 저가투찰 발생원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먼저 최 연구위원은 재무상황이 불량한 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으로 채무불이행을 염두에 두고 저가투찰을 통해 낙찰 받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또한 도급생산체계 하에서 하도급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것을 전제로 덤핑 투찰하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투찰자가 발주자와의 재협상을 전제로 헐값으로 공사를 수주해 착공한 뒤, 발주자에게 설계나 계약조건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비합리적 저가투찰의 사례로 꼽았다.

이 밖에도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저가 투찰을 감행하는 행위 역시 불합리한 저가입찰이 된다고 꼬집었다.

적정 낙찰률은 81∼85% 수준

그렇다면 현재 공공공사의 낙찰률은 얼마나 될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 대상공사의 낙찰률은 제도 도입 초기 65%까지 하락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004년에는 낙찰률이 60% 선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 저가심의제가 도입되면서 2011년 현재 평균 낙찰률은 73%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적격심사제 등 여타 입찰방식과 비교할 때, 10% 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다.

또한 2011년 최저가낙찰제의 평균낙찰률 73%는 2004년을 기준으로 환산할 때 예정가격의 6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최 연구위원은 “현재 최저가낙찰제의 평균 낙찰률이 73% 수준이며, 현장 실행률이 계약금액대비 평균 104.8%라는 실태조사결과를 고려할 때,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최저실행가격에 해당하는 낙찰률은 78∼80%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저가 하도급을 방지하고 숙련공 투입 등 계약자의 질적 개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적정 낙찰률은 81∼85%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 연구위원은 “가격경쟁 하에서는 ‘위험회피적(Risk-averse)’인 입찰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덤핑입찰을 통해서라도 낙찰을 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발주자는 사회 후생을 악화시키는 덤핑 입찰을 걸러낼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서 일정한 낙찰하한선 이하의 투찰을 탈락시키거나 혹은 덤핑심사를 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특히 외국의 사례를 고려할 때 낙찰하한율 설정 시에는 발주자가 설정한 가격 이외에 입찰자의 평균 투찰가격이나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최저 투찰자에게 만점 줘선 안돼

정부가 공공입찰 제도개편을 위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종합심사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종합심사제는 공사 수행능력과 가격, 사회적 책임 등을 두루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게 핵심인데, 이 중에서도 가격평가가 어떻게 이뤄질지에 업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지난달 21일 열린 공청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면 종합심사제 가격평가의 기본원칙은 낮은 가격일수록 높은 배점을 받도록 하되, 점수 상승폭은 줄인다는 것이다.

또한 균형가격 이하의 일정구간은 동일점수를 주고 균형가격보다 큰 폭으로 낮은 가격을 써낸 입찰자에겐 기본점수를 부여하기로 했다. 저가입찰 및 덤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저 투찰자에게 만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최 연구위원은 “현행 공공공사 입찰에서는 입찰 참여와 관련된 경쟁제한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며 “가격평가 측면에서 최저 투찰자에게 만점을 부여할 경우 한계기업이나 부실업체의 덤핑입찰에 의한 저가 수주를 방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종합심사제 입찰에서도 최저 투찰자에게 만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입찰자의 평균투찰가격과 발주자가 추정한 최저실행가격을 활용해 투찰가격을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계기업이나 부실기업에서 전략적인 덤핑입찰을 억제할 수 있도록 일정 투찰률 이하에서는 보증을 거부하거나 혹은 보증한도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연구위원은 “턴키나 기술제안입찰의 경우, 설계나 기술평가에서 변별력이 약할 경우 가격요소에 의해 낙찰자가 선정될 우려가 높으므로 기술점수의 비중을 최소한 60%로 설정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적정공사비 적용을 위한 당면과제

적정공사비를 산정하고 이를 실제 공사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시스템을 만드는 건 발주처와 시공업체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적정공사비를 “기업이 대상 공사를 계약 내용에 따라 수행하기 위해 투입하는 직접 또는 간접 생산비용과 적정 이윤을 포괄하는 기회비용”으로 정의했다.

바꾸어 말하면, 적정공사비는 “법령이나 시방서 등에서 정하는 소요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고, 더 나아가 시공자가 질적 개선 투자에 대한 유인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시공비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적정공사비를 합리적으로 산정해 시공품질을 높일 수 있는 시장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저가입찰 업체가 아닌 실질적 경쟁력을 갖춘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할 수 있는 명확한 평가체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신규사업자 등록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부정 공동도급의 그릇된 관행을  차단하는 등 건전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업계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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