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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공사비 삭감, 지역경제에 찬물
무리한 공사비 삭감, 지역경제에 찬물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3.09.24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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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지자체 계약심사, 어떻게 볼 것인가
예산낭비 막기 위해 도입…역기능도 드러나
‘지역중기 육성·보호’ 정책적 측면 고려해야 
심사 전 현장확인-전문인력 확보 등 급선무 

○…지난해 3월 30일 서울시는 정보통신 및 전기, 철도분야 전문가와 발주처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가분석자문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SH공사가 발주한 세곡2지구 보금자리 아파트 건설공사(1, 3, 4단지)의 공사원가가 제대로 산정됐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해당 공사의 통합 세대분전반 조립 및 설치 품이 적정하게 책정됐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또한 헤드엔드(Head End) 시스템의 공량 변경이 적정한지를 꼼꼼하게 살폈다. 이와 함께 전차선 지지철물 교체가 타당한지도 상세히 검토했다.

회의 결과 관련공종의 공사비가 738억6100만 원으로 하향조정 됐다.
당초 발주처에서 요청한 금액은 790억2100만 원이었는데 이날 회의를 통해 공사비가 51억6000만 원(6.5%)이 줄어든 것이다.

공사비 하향조정은 동전의 양면

이날 회의는 서울시가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계약심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업의 적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관계 전문가들이 모였는데, 핵심 의결사항은 공사비를 당초보다 낮게 조정했다는 점이다.

공공 발주처의 공사비 하향조정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발주처 관점에서는 예산절감이지만 시공업체를 비롯한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공사비 삭감이다.

공사비가 깎이면 사업자는 일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사람을 부리고 자재를 사는 게 버거워진다. 당연히 이윤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쩔 도리 없이 사업자는 조금이라도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때론 편법과 불법이 동원된다.    

지자체가 시행하는 계약심사는 동전 던지기와 닮아 있다. 동전의 앞면엔 지자체의 얼굴이, 뒷면엔 사업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지자체가, 뒷면이 나오면 사업자가 이긴다.

지자체가 승리하면 예산절감이라는 고지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사업자가 승자가 되면 공사비 보전 또는 상향조정을 통해 본래의 밑그림을 고치지 않고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외부의 거센 공격에 맞서 최소한의 방어에 성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100번을 던지면 99번쯤 앞면이 나온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사업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예산낭비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궁극적으로 예산절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껏 동전을 던진다. 

3억 이상 정보통신공사 등 의무화

계약심사는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의 원가산정, 공법선택, 설계변경의 적정성을 심사해 사전에 예산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제도다.

지난 2003년 서울시가 처음으로 시행한 이후 2008년부터 16개 시·도로 확대됐다. 이후 2010년 5월부터 기초 지자체인 시·군·구까지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계약심사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발주예산이 계약부서로 바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이에 발주예산이 예정가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계약심사는 크게 원가심사와  설계변경심사로 구성된다.
원가심사는 설계단계에서 원가산정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이다.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 및 용역, 물품의 제조 및 구매를 대상으로 심사가 이뤄지는데 심사대상은 사업규모 및 공종 등에 따라 달라진다.

광역지자체인 시·도가 발주하는 정보통신 및 전기, 설비, 조경공사의 경우 3억 원 이상의 사업이 심사대상이 된다. 토목·건축 등 일반공사는 5억 원 이상이 심사대상이다.

시·도가 발주하는 기술용역은 2억 원 이상, 일반(학술)용역은 1억 원 이상인 사업이 원가심사를 받는다. 물품의 제조·구매에 대한 원가심사 범위는 2000만 원 이상이다.

기초 지자체인 시·군·구가 발주하는 공사의 경우 2억 원 이상(일반공사 3억)은 의무적으로 원가심사를 받아햐 한다. 용역은 7000만 원 이상이 심사대상이고, 물품의 심사대상은 2000만 원 이상으로 광역 지자체와 동일하다.

설계변경심사는 20억 원(시군구는 5억 원) 이상 공사의 계약금액이 10% 이상 늘어난 경우에 실시된다.
이처럼 의무적 심사대상이 정해져 있지만 각 지자체는 심사대상 이외의 사업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계약심사를 실시할 수 있다.

서울시, 올해 사전심사제 도입

각 지자체는 계약심사를 통한 예산절감 성과에 고무돼 있다.
지난해 5월 당시 행정안전부가 전국 지자체의 ‘2011년도 계약심사 실적’을 분석한 결과, 총 22조2484억 원의 사업을 심사해 약 1조4117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절감분을 비율로 환산하면 6.35%에 이른다.

서울시의 경우 계약심사 성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총공사비 5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 공사에 대해 사전계약심사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사전계약심사 제도는 설계 진행 중(실시설계 80% 전후)에 설계내용의 경제성을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는 설계가 완료된 후에 심사를 하던 기존의 계약심사 제도를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사비 삭감, 중기 육성에 걸림돌

이처럼 계약심사제도는 지자체의 예산낭비를 막고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계약심사제도의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지방자치단체 계약심사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계약심사제 운영 현황과 검토과제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보고서는 계약심사제도 운영과정에서 거래비용에 해당하는 행정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도 시행 이전에는 없었던 부서와 담당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예산절감이라는 성과에 집착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사원가의 거품이나 적용공법의 오류 등은 계약심사 과정에서 확실하게 걸러질 수 있어야 하지만 계약심사제도가 행해지는 경우 대부분 공사비 삭감으로 직결되는 것은 재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사비 삭감이 지역의 중소 시공업자 육성과 근로자의 노무비 책정, 고용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계약심사에 의해 공사의 예정가격이 낮아지고 예가 대비 원도급 낙찰률이 결정되면 하도급 공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상관관계는 결국 건설근로자의 고용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덧붙여 보고서는 지속적인 하락추세를 유지하고 있는 계약단가가 실적공사비로 반영되기 때문에 매년 실적공사비가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절감 홍보수단 활용 안돼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도 제시했다.
우선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소재 중소기업의 육성 및 보호라는 지자체의 정책적 기능을 고려하는 바탕 위에서 계약심사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심사제가 단기적인 예산절감 효과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계약심사 결과와 실제 공사수행 결과를 연계해 공포하는 방안을 시행해야 하며, 계약심사과정에 공사현장을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장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도서만을 검토해 공사비를 삭감했을 경우 실제 시공과정에서 부실시공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계약심사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담당공무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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