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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만리장성 넘는 CDMA 전도사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만리장성 넘는 CDMA 전도사
  • 한국정보통신
  • 승인 2001.12.01 09:54
  • 호수 1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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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3일 오후 11시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무역센터 콩그레스홀. 2008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제122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드디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결과 발표를 위해 단상에 섰다. 팽팽한 침묵, 그리고 一聲.

"베이징, 차이나!"

순간 붉은 재킷을 맞춰 입은 중국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같은 시각 미국 뉴저지 루슨트 테크놀로지 본사. 한 한국인 신사가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슨트와 중국 현지 합작공장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방미한 동아일렉콤(주) 이건수 회장(59)이었다. 중국의 올림픽 유치는 이회장의 삶에 또 한 번의 가슴 뛰는 도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회장은 한국 통신산업 중국 진출의 주역이다. 정보통신부 노희도 국제협력관은 "한마디로 중국이 CDMA 방식을 채택하고 국내 업체 장비를 수입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회장과 가까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이런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이회장은 재계에서 중국 공산당 및 군부 최고위층과 '따꺼(중국어로 형님)'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1985년 말 이회장은 한 친구로부터 "통신용 전원장치를 개발해 놓고도 자금이 모자라 부도 직전에 몰린 기업이 있다. 인수해 운영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미국에서 통신장비 유통업을 하며 첨단 분야에 어느 정도 식견을 쌓은 이회장은 "기술만 확실하다면 한번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사람들은 "어렵게 번 돈 다 날린다"며 극구 말렸지만 이회장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수한 기업이 동아전기(현 동아일렉콤)다. 이회장은 구리시에 있던 공장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옮기고 1987년에는 30억원을 투자해 전원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ETRI는 삼성반도체통신·금성반도체·대우통신·동양전자통신 등과 손잡고 국산 TDX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아일렉콤은 TDX의 '심장' 역할을 하는 전원장치 개발 업체로 선정된 상태였다. 연구진은 이회장의 독려에 힘입어 TDX용 전원장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어 디지털 옥외용 정류기, CDMA용 전원시스템, 고주파 정류기, IS-95 PCS 옥외 전원시스템 등의 개발에 잇따라 성공해 관련 시장을 독점하는 선두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1996년부터는 세계 굴지의 통신장비 제조회사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제품을 납품했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해 10∼15%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으며, 매출액 대비 순익·세금납부 비율도 대단히 높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아일렉콤은 대기업 수준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다. 보너스가 1,300%, 부장 연봉이 7,000만원을 넘는다. IMF 시기에도 800%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사내에는 노래방, 테니스장, 사우나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재능이 뛰어난 직원은 야간대학은 물론 외국 유학도 지원한다. 대학까지의 자녀 학자금도 전액 지원한다. 그래서일까, 공장은 깔끔하고 직원들의 태도는 절도가 있었으며 표정도 밝은 편이었다. 직원 300여 명 중 100여 명이 연구 인력이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사실 이회장이 업계에서 오늘과 같은 위치를 점하기까지는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중국·베트남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 큰 힘이 됐다. 이회장은 1992년부터 TDX, 그리고 CDMA의 해외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회장은 1992년부터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중국을 방문해서는 출생지인 스자장시에 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중국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이회장은 스자장에 있는 중국 정부의 국장급 관료 재교육장인 우전학교에 10만달러를 쾌척했다. 단 세 대의 구형 컴퓨터 밖에 없던 곳에 최신형 PC 30대, 프린터, 의자는 물론 교실 3개를 지어주었다. 이후로 이회장은 그 학교에 매년 10만달러씩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우전대학에도 장학금을 쾌척했다.

이회장과 중국 고위층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우편박람회 참관 차 방한한 신식산업부 루첸지안 수석부부장 이하 40여 명의 관료들을 이회장이 도맡아 영접하면서 시작됐다. 이회장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원까지 직접 데려가는 열성으로 이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류차관은 이회장의 집까지 찾아와 노모와 스자장시에 얽힌 추억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회장의 '중국인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중국 관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듬해 우지촨 신식산업부 부장이 방한했다. 이회장은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우부장의 수행을 도맡았다. 경상현 당시 정통부장관, 박재윤 상공부장관, 김무성 내무부 차관 등을 동원해 김영삼 전대통령과 우부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중간에 ETRI를 방문해 우부장이 직접 CDMA를 시연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이를 주요 신문에 게재토록 해 비즈니스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이후로도 이회장은 중국 상층부와 친분을 계속 넓혀갔다. 우부장은 물론 중국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쩡칭훙 공산당 조직부장, 조선족 출신의 조남기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우방궈 부총리, 좡보린 공산당 조직부 부부장, 왕자루이 대외연락부 부부장 등이 이회장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중국 최고위층의 면면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주룽지 총리의 회담에서 CDMA 수출 관련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면에도 이회장이 있었다.

2000년 3월에는 대통령 특사 고문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10월 ASEM회의 때는 주룽지 총리와 10분 남짓 독대를 했다. 당시 주룽지 총리는 인민해방군 중심으로 추진 중이던 CDMA사업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사업권을 회수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만찬 석상에서 중국 대사의 안내로 주룽지 총리 곁에 다가간 이회장은 대뜸 "지난번 특사 고문으로 중국에 갔을 때 뵙기를 청했지만 안 만나주셔서 할 수 없이 우방궈 부총리만 만나고 돌아왔다"며 '투정'을 늘어놓았다. 통역을 통해 이 말을 들은 주총리는 재미있다는 듯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분위기를 기회 삼아 이회장이 CDMA의 장점을 한껏 홍보했음은 물론이다.

올 4월, 이회장은 다시 한번 대통령 특사 고문이 돼 중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양승택 장관, 우지촨 부장 등과 함께 주총리를 면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렇듯 단순하지만은 않다.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만큼 정권 유착설이 끊이지 않고, 지나치게 큰 영향력은 동아일렉콤의 독주와 맞물려 불공정 경쟁의 수혜를 입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해외시장 개척 역시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있다.

무엇이 그의 진짜 얼굴, 야망의 실체인가. 통신 시장 지각 변동과 대선을 앞둔 지금, 이회장의 행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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