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바쁜 걸음을 치도록 우리를 재촉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흑백 화면을 통해 70년대로 한 번 돌아가 보자.
대낮처럼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늦은 밤까지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지하철에, 버스에 몸을 싣고 여관같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내일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종종 생각한다. '어린 시절로 한번만 돌아가 볼 수 있다면!'
어린 시절, 옛날 그 시절은 단지 '젊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기분……. 과거의 회상은, 마치 아주 먼 곳으로의 여행처럼 우리에게 그리움으로 가득한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심지어 등 따뜻하고 배부른 오늘보다 춥고 허기지던 어제가 더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진 온갖 걱정거리와 하등 관계가 없는 것. 그것이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절'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친구'는 70∼90년대를 관통하는 네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부산만을 촬영장소로 고집하는 '부산 사나이' 곽경택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짭짤하고 축축한 바닷바람 냄새와 걸쭉한 부산사투리를 배경으로 관객을 흑백의 70년대로 안내한다. 잊어버리고 살던 70년대의 일체를 우리 앞에 던져주고는 우리가 감탄에 빠지고, 회상에 잠기게 만든다.
검은교복, 교련복, 옛날 교과서, 푸른색 책가방,
'친구'에서는 폭력조직 두목 아버지를 둔 준석,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 화목한 가정에서 티없이 자란 상택, 밀수업자 부모를 둔 중호 네 친구가 10대에서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슬프고 기쁜 자잘한 추억들과 끈끈한 우정을 함께 나누던 네 친구가, '시간'과 '삶'의 거센 흐름에 휩쓸려 가면서 겪는 배신과 사랑, 안타까움과 체념이 관객을 영화 '밖에' 있도록 놓아주질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70년대를 따라 학창시절로 돌아갔다가 등장 인물들의 삶을 따라 울고 웃고 하는 사이에 마음 속에 묵혀 뒀던 온갖 구질구질한 찌꺼기들을 털어버리게 될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20년이라는 '세월'의 여과장치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각지에서 벌써부터 영화 '친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전문가들도 치밀한 화면과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작품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 현란하지도 않은 흑백의 화면을 타고, 마음속의 모든 묵은 노폐물을 씻어낼 수 있는, '휴식'을 가지길 추천한다. '친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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