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의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이 국무조정실 중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R&D 지출 한도는 두 부처 장관이 협의해 정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사실상 R&D 예산 권한이 과기정통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기재부 고유권한이던 예산편성권을 전문성이 부족한 과기정통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조정실 관계자에 따르면 R&D 사업의 예타(예비타당성) 권한이 기재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위임된다. 예타는 정부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경제성, 효용성 등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과학기술 정책을 발표하면서 ‘사람중심 과학기술’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 과기정통부 산하에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 R&D 연구 개발 업무 총괄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기재부는 R&D 분야의 예타권만 과기정통부에 넘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해왔다. 이후 부처 간 협의가 되지 않아 법 개정은 약 5개월간 난항을 겪었다. 결국 국무조정실 등이 중재에 나서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에 따라 내년도 R&D사업 예산 19조6000억원에 대한 조정은 과기정통부가 맡는다.
기재부의 고유 권한이었던 예타 및 지출 한도 설정도 과기정통부가 담당한다. R&D 사업의 경우 도전적인 성격이 강해 경제성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재부에서 평균 20개월이 걸리던 예타 기간 역시 6개월로 단축된다. 예타 기간을 단축해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는 정부 포석이다.
다만 과기정통부는 기재부의 극심한 반발을 의식한 듯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하나의 부처가 모든 일을 해결 할 수는 없으며, 협의할 사항들이 분명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협의처를 구성해 기재부와 의견을 교환하며 업무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형식만 위탁일 뿐 예타 업무를 진행하는 데는 어떤 제약도 없다”면서 “평균 20개월 걸리던 예타를 이르면 6개월 만에 끝내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 R&D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재부의 부정적인 입장은 여전했다.
R&D분야의 예타권만 과기정통부로 이관하는 게 여타 기관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예산편성에 전문성도 부족할 것이라며 이를 반대해 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달갑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R&D 예산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권한이 모두 과기부가 맡으면서, 양부처간 원활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월권’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생선가게 앞에 고양이를 방치하는 결과가 올 수 있다”고 토로했다.
과기정통부가 R&D 예타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한다. 일부 수정을 거쳐 연말쯤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