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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표준, 돈, 힘
[기자의눈] 표준, 돈, 힘
  • 박광하 기자
  • 승인 2017.11.2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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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박혁거세와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라를 세우기 전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신인(神人)에게서 '어떤 물건'을 받았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천명(天命)을 상징하는 신인은 그 둘에게 "세상을 바로 잡으라"며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을 건네준다. 바로 금척, 금으로 만들어진 '자'다.

조선왕조에서 암행어사를 지방으로 내려보내며 지급하던 물품 가운데 놋쇠로 만든 자(유척)가 있다. 측량 도구를 조작해 백성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들여 착복하는 탐관오리를 적발하기 위한 도구다. 조선 후기, 특정 가문이 조정의 권세를 틀어쥐던 '세도정치' 때는 삼정(三政)이 문란해 조정도, 암행어사도, 유척도 제구실을 못했다. 나라는 피폐해졌고 머지않아 일제에 의해 망국을 맞이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끝낸 진(秦)의 시(始)황제 영정은 지역마다 제각각인 도량형을 통일하고 백성에게 이를 따르도록 강요했다. 진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은 시황제 사후 반란을 일으켜 제국을 무너트렸고, 그 뒤 유방(劉邦)이 한(漢)을 건국했다. 하지만 그 또한 표준 도량형을 정해 대륙을 다스렸다.

우리가 표준을 지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표준이 혼란해지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시민들이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표준의 혼란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방송사들이 유럽식 표준으로 UHD 시험방송을 할 수 있게 허가를 내줬던 정부는, 지난해 돌연 국내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을 미국식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올해 공공기관에 납품된 UHD TV의 78% 가량이 유럽식 표준 적용 제품이라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그렇게 납품받은 TV로 UHD 방송을 보려면 별도의 수신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이 장치는 나랏돈으로 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은 종종 이런 식으로 쓰인다. 미래에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가령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이 나라마다 다르거나 자주 바뀌는 탓에 호환에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국가 간 통상이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국제 표준을 제정해 이를 지킨다. 표준을 공유·준수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몹시 크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또한, 표준과 관련된 지식재산권을 가진 기업은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 '퀄컴'이나 '램버스'가 그 예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국가는 재료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지 않고서는 번영을 누릴 수 없다. 만약 각종 산업 표준이 나라마다 달라 그것에 맞춰 제품을 개발·수정·수출해야 했더라면 우리는 무역 대국이 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표준은 '돈'과 '힘'을 부른다. 이것은 과거 여러 번 증명됐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국가적으로 역량을 모아 세계 표준 경쟁에 뛰어들어 이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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