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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살아남은 명맥
[기자수첩] 살아남은 명맥
  • 박현일 기자
  • 승인 2018.04.17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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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도 너무 빠르게 느껴집니다.”

중소 장비업체 A사장이 한숨을 토해내며 한 말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10년 전 당시 외산에만 의존해오던 통신장비를 국산화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현재 A사장은 외산장비를 유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매출이 회사의 제일 큰 돈줄이다.

자체기술로 만든 국산장비는 어떻게 됐을까. 출시 3년이 지날 무렵 유사한 스펙의 중국산 장비가 국내에 낮은 가격으로 출시돼 판매량이 극감했다. 매출이 줄어들자 연구개발비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했고, 후속으로 내놓을 예정이였던 장비도 출품 시기를 놓쳤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산장비를 유통하게 됐다고 한다.

국내 다수의 중소 장비 제조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이와 유사하다. 제품 개발에 착수해 상용화시키는 동안 이미 구식이 돼버리는 경우도 생겨버리고, 상용화 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짧은 시간에 외산 업체가 더 낮은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도 흔하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든 경우도 빈번하다. 그간 수 많은 업체들이 도산했고 이 바닥을 떠났다. 살아남은 이들은 외산장비 유통이나 통신장비 설치공사를 저가로 하도급 받아가며 겨우 살아남았다. 미래만 보며 겨우 버텼다.

이들은 곧 다가올 5G에 주목하고 있다. LTE에 비해 설비투자가 50%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5G 시장에서 이들이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이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국내 장비업계가 5G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장비를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사용하도록 강제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소한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할 필요는 있다.

국내 중소 장비제조사들이 지탱하지 못한다면, 만약 5G 시장에서도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면, 국내 장비산업은 외산에 모두 뺏겨버릴 우려가 있다.

반갑게도, A사장의 국산화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고 있다. 더디지만 국산 장비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척박한 땅에 내린 뿌리가 더욱 생명력이 강하듯, 어려운 환경에서 명맥을 이어온 국내 장비업계가 더 깊게 뿌리 내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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