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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밑지는 장사꾼의 비애
[창가에서] 밑지는 장사꾼의 비애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8.05.28 08: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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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이 밑지고 판다.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고 한다. 노인이 죽고 싶다고 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3대 거짓말’이다. 이에 대해 누구나 공감의 미소를 보낸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들의 사실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는지?

우스갯소리의 진위를 살피는 일이 좀 생뚱맞겠으나,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참일 수 있다. 공공부문의 시설공사를 수주한 시공업체들이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따져보면 분명히 그렇다.

대한건설협회가 2014년부터 2017년 4월까지 준공된 공공공사 129건의 실행률(공사비에서 일반관리비와 이윤을 빼고 현장에 투입된 비용을 비율로 환산한 것)을 분석한 결과, 48건(37.2%)이 적자기준인 10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공사 10건 중 4건이 적자공사라는 뜻이다. 어렵게 공사를 수주하고도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건설사의 턱없이 낮은 영업이익률 역시 영양가 없는 공공공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2016년을 기준으로 공공공사만 수행하는 3121개 건설사의 평균영업이익률은 -24.6%로 조사됐다.

왜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다수의 공공 발주처에서 공사비를 매우 박하게 책정하고,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 위주로 낙찰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발주처 책임으로 공기가 연장됐는데도 이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공공공사의 가격산정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도 적자시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더욱이 계약과정에서 부당특약을 설정하거나 공사 수급자의 이의제기에 발주자가 보복조치를 하는 등 불공정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공업체는 제 값을 받고 공사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적자시공을 하게 되면 해당업체의 숨은 매우 가빠진다. 적정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당장의 운영비를 마련하고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여러 가지 꼼수를 부릴 공산이 크다. 정해진 기준에 맞지 않는 저급한 자재를 쓰거나 투입인력을 줄이는 등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부실시공의 씨앗이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암초가 된다. 현금이 제대로 돌지 않으니 부채가 많아지고 금융비용의 증가도 불가피해진다.

적자시공이 국가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됨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남는 장사를 하지 못한 기업은 성장할 힘을 잃게 되고, 이는 소비·투자의 부진과 낮은 고용으로 이어진다. 경제전반의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밑지는 공사를 왜 하는가. 조금이라도 이문이 남는 공사를 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현장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든 일감을 확보해 적은 공사비라도 받지 않으면 당장 회사를 꾸려가기가 어려워진다.

실적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공사를 수주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다수 입찰에서 시공경험을 낙찰자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협력사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올해 공사실적이 없으면 이듬해 협력사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다. 다른 항목에서 만회하지 못할 경우 협력사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뻔히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적자시공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난마처럼 얽힌 난제를 단숨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배배 꼬인 매듭부터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효과적으로 개입해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일례로 20년 가까이 변동이 없는 적격심사제의 낙찰하한율을 상향조정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공공 발주기관의 불공정 행위 근절을 법제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소 시공업체의 건실한 성장은 건강한 산업생태계의 기본토대다. 정부가 화학비료 같은 단기대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김매기 같은 근원적 제도정비에 나서야 한다. 진정으로 풍성하고 튼튼한 산업생태계를 일구기 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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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18-05-28 12:57:51
정말로 공감가는 글입니다. 좋은 기사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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