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조어 중에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는 뜻으로, 분위기 파악을 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의료기기 관련 업체를 운영 중인 기자의 지인은 지난해 영업 손실이 막중하다며 볼 때마다 푸념을 늘어놓는다. 지난해 규제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고 야심차게 개발한 스마트헬스기기가 여전히 막혀 있는 의료법 규제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ICT 강국답게 국내 스마트헬스 관련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알려졌으나,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의료법 규제로 인해 많은 기술들이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이사는 지난해 한 정책간담회에서 "전 세계 100대 유니콘 스타트업을 분석한 결과 40%는 한국에서 불가능하고, 30%는 일부 사업모델을 포기하면 가능한 절름발이가 된다"고 발표했다.
규제 혁신을 강조하는 현 정부 기조와는 달리,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기업규제 법안도 상황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안과 공정위의 담합 규제안 등도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연구개발이나 프로젝트성 업무가 많은 ICT 업계의 특수성을 전혀 감안하지 못한 주52시간 근무제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작은 정부가 답'이라는 단순 논리를 들이밀려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5G 이동통신의 산업간 융복합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5G 산업간 융합 생태계 조성을 국가적 의제로 설정하자"고 주장했다. 5G 융합 생태계가 성공적으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핵심 시장 파트너와 협력을 통해 생태계 발전을 유도하는 운전자, 즉 선도기업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수행해달라는 주문이다. 일개 기업이 단기 이익에 집중하지 않고 공동성장을 추구하며 생태계 활성화에 매진하기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고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관련 산업이 클 수 있도록 적극 지원·육성해달라는 것이 정부를 향한 기업들의 일관된 요구다.
다만, '필요한' 규제를 골라내고, 뒤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한편,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해 과감한 지원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경영하기가 어느 때보다 어렵다고 볼멘 소리를 늘어놓고,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 5G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인 올해에는, 정부에게 '낄끼빠빠의 지혜'가 생기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