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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고독한 경영자를 위한 기도
[창가에서] 고독한 경영자를 위한 기도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9.04.22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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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과 땀 흘렸던 빛나는 순간과 고독한 결정을 해야 했던 불면의 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난 16일 오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띄웠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대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의 결정을 전하며, 임직원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우리나라 제2 민간항공사로 출범해 30여 년 간 국내외 하늘 길을 누벼왔다. 경영에 부침이 있었지만, 2009년 이전까지 성장가도를 달렸다.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항공시장을 양분하며 꾸준히 취항노선을 늘렸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의 몸집을 키웠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품에 안았을 땐 재계 순위가 7위로 급상승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세 확장은 결국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6조6000억원에 이르는 대우건설 인수자금을 대부분 외부차입으로 조달한 게 패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룹의 재무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빠졌다.

비약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승자의 저주’에 날개를 꺾인 아시아나항공을 바라보는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치름으로써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195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원유 매장 가능성이 있는 곳을 골라 석유회사를 상대로 경매를 실시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유 시추권을 따내기 위해 유전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내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낙찰자는 입찰에서 이기고도 큰 손해를 떠안아야만 했다.

정보통신업계에서도 승자의 저주를 목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예로, 주파수 경매를 들 수 있다. 통신사들은 원하는 주파수 블록과 대역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자연스레 경매비용이 상승하면서 자금조달에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

문제는 과도한 경쟁의 파장이 통신사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이용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주파수 경매를 둘러싼 ‘쩐(錢)의 전쟁’은 통신시장을 교란시키는 단초로 작용한다.

건설·전문시공업계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수시로 일어난다.

무조건 공사를 따고 보자는 심산으로 실행원가에 못 미치는 저가투찰을 하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낙찰의 기쁨도 잠시, 공사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인력과 장비운영, 자재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승자가 되는 모양이 다르지만, 낙찰자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구조는 동일하다. 공사비 부족으로 부실시공을 유발할 수 있고, 시장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선순환적 산업생태계 조성을 가로막는 등의 부작용도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모든 경영자에게 결정의 순간은 매우 고독하다. 박삼구 전 회장도 외롭고 쓰린 시간을 견뎌왔을 것이다.

기업경영의 결과를 가정법으로 풀이하는 게 온당치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시계추를 2006년 으로 되돌려 박 전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내다팔아야 하는 비운은 맞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도 절박한 의사결정의 순간과 마주할 수많은 경영자들에게 찬사와 위로를 보낸다. 그들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고 싶다.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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