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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가치충돌’의 세상 속에서
[창가에서] ‘가치충돌’의 세상 속에서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9.09.23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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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만화영화에서 바라보던 세상은 무척 단순했다.

로봇태권브이의 주인공인 훈이와 영희를 닮은 ‘좋은 사람’이 있었고, 그 반대편엔 험상궂은 얼굴로 온갖 악행을 일삼는 ‘나쁜 사람’이 있었다.

권선징악은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가치였다. 좋은 사람은 언제나 험난한 시련을 딛고 나쁜 사람을 물리쳤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란 믿음은 남산의 소나무처럼 크고 단단해 보였다.

그러나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다보면 이 견고한 가치가 흔들릴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사람과 사물, 신기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초연결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각양각색의 판단기준과 가치들이 서로 충돌한다.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올바른 판단이 어려울수록 인식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더욱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진영논리나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전기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법안의 기본 취지를 존중하되 법 제정의 파급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사실, 법안 발의의 기본취지는 단순 명료하다. 전기산업의 지원과 육성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는다고 했다. 법안의 일부 내용과 규정들이 기존 정보통신공사업법과 부딪힐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 나아가 발주처의 혼선을 초래하고 업역 간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기계에서는 법안의 기본취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일단 법을 제정한 후 세부내용을 조율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은 무조건 서두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갖고 시작한 국회의 입법활동이 당초 취지와 다른 결과를 낳거나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 사례를 수없이 목도했다.

기자의 주장을 명확하게 밝히자면 법안 제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게 옳다.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전기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업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는 게 상책이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고지를 바라보며 험산준령을 넘어 왔다.

산업화는 시장의 역동성과 혁신을 자극했고, 민주화는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일구는 데 소중한 원동력이 됐다. 이제 한국사회는 두 개의 가치를 아우르며 더 밝은 미래로 달려가야 한다.

정보통신산업과 전기산업 발전의 얼개도 비슷하다. 두 산업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되, 각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상호존중의 토대 위에서 두 산업간 융합의 물꼬를 트고 공조의 길을 넓힐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켜 전기산업의 고도화를 꾀하되, ICT융합의 핵심업무를 정보통신전문가에게 맡기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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