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캠페인에 따르면, 불이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불이야 불이야’ 외치는 것이란다. 화재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벽과 벽 사이를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전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외치는 사람 역시 한시바삐 그 곳을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성도 없다. 비상방송설비의 설치가 필수인 이유다.
그런데 화재시에 비상방송설비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 건물이 소방청 집계로 3만2823개소라고 한다. 조사대상의 약 77%에 달하는 수치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든 방송을 듣고 대피할 확률 보다 그렇지 못 할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소방청은 이 건물들에 대해 비상방송설비 성능을 개선하라고 공표했다. 그 개선완료 권고시기가 이달 말까지라니 며칠 안 남았다.
모든 건물주들이 이 조치에 잘 따라주면 좋으련만, 분명 돈이 드는 일일 것이다.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저 내가 들어가 있을 건물에는 불이 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비상방송설비에 대한 명확한 기술기준이 없다는 것은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사안이다. 기준이 없으니 설치를 해도 제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업체들은 저마다 자기네 기술이 좋다고 주장할 것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건물주가 판단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표준이 없으니 유지보수조차 그 업체가 아니면 못 할 것이다.
어쨌든 비상방송설비 자체가 구내방송설비의 일종이며 대부분 구내방송이 이를 겸용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전문성을 가진 정보통신 관계법령에서 기술기준을 정하는 것이 맞다. 지금은 소방 관할이다.
일전에 취재차 참석한 관련 행사에서 이 분야를 담당한 소방청 관계자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통신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비상방송을 맡게 되면서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다는 얘기다. 그 노고는 높이 살만 하나, 전문성이 결여된 점검이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본 건에 대해 취재를 하다보니, 흥미롭게도 통신과 소방 양측에서 비상방송설비에 대한 묘한 기류가 형성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기술기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오히려 이것이 명확해짐에 따라 어느 한쪽의 ‘밥그릇’이 날아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염려다. 그나마 통신과 소방을 겸하는 업체도 많아 그 대립각이 크진 않다.
유독 한파의 빈도가 많아질 것이라는 올 겨울이다. 난방기구에 의한 화재가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디 산업간 밥그릇 싸움 때문에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