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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참호 안의 병사처럼
[창가에서] 참호 안의 병사처럼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0.03.16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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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두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을 할 채비를 한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으니 트렌치코트(trench coat)가 제격이다.

봄·가을마다 즐겨 입는 옷이지만, 트렌치코트에 어린 가슴 아픈 사연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trench’는 참호라는 뜻이다. 참호는 전쟁터에서 적의 총포탄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도랑을 가리킨다.

1914년부터 4년간 펼쳐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사상 최악의 참호전을 벌였다. 병사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밤낮없이 참호를 파야 했다.

비가 자주 내렸던 까닭에 참호 안에서는 방수가 되는 옷이 필요했다. 그 때 입었던 짧은 모양의 방수 외투가 오늘날 트렌치코트의 시초가 됐다.

병사들에게 참호는 집이기도 했다. 사격을 하다 적이 물러나면 그 안에서 그냥 먹고 잤다.

참호 안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축축하고 악취가 풍겼다. 그래서 참호 안에는 쥐가 들끓었고 온갖 질병이 창궐했다.

병서(兵書)에는 1915년 겨울 어느 병사가 집으로 보낸 편지의 구절이 남아 있다.

“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뜻하게 지낸다는 것은 이따금 가능할 뿐이고 건조하게 지낸다는 것은 웃긴 일이지요.”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 국민의 모습이 처절한 참호전을 펼치는 병사들을 닮았다. 코로나의 포탄을 맞고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른다.

코로나의 공포는 일상생활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갑작스럽게 공사가 중단된 시공현장이 수두룩하고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식당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집으로 몸을 숨긴 이들도 적지 않다. 원격·재택근무로 업무 공백을 없앤다지만 집에서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체감경기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시경제 지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등 22개 ICT협·단체가 최근 ICT업체 3281곳을 대상으로 코로나 피해를 조사한 결과, 응답업체 490개사 중 84개사가 △납품공급애로 △원자재수급 애로 △연구개발 및 협력 중단·지연 △수출입지연·중단 △생산 가동중단 △계약물량취소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공포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는 불확실성이다. 코로나사태가 얼마나,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뚫고 앞으로 계속 가야한다. 지루한 참호전을 펼쳐야 하는 병사의 운명처럼.

정부는 경제의 심폐소생을 위해 추경을 편성했다. 이제는 나랏돈을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4.15 총선을 앞두고 전시성 사업에 예산을 허투루 쓰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책의 효율과 속도를 함께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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