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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공정사회 가로막는 불공정… '제도 개선'이 상생 해법
[기획] 공정사회 가로막는 불공정… '제도 개선'이 상생 해법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0.03.31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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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불공정 사례 분석

사업대금 임의 감액…지급 지연도
우월적 지위 갖고 있어 항의 어려워

감사원, 공공기관 규정 개선 통보
인센티브제 도입 등 국회 숙제 남아

감사원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 결과, 이들 기관이 각종 불공정행위를 일삼는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의 유형도 다양했다. 감사를 벌여 담당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해도 불공정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제도 개선을 통해 불공정행위 발생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계약상 우월적 지위 남용… 시공업체 눈물

공공기관들이 정당한 근거도 없이 공사금액을 후려치는 것은 오래된 불공정 관행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공기관들이 공사·물품·용역계약의 예정가격 결정 시 관행적으로 기초(추정) 가격이나 사정금액에서 2~5.5%를 감액해 기초금액을 산정하고 있었던 사실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9조 제1항 등에 따라 원가계산 등을 통해 산정된 추정가 등을 임의 감액한 것으로, 내부 계약규정에 근거를 두거나 계약 규정에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공공기관들의 이 같은 행위로 예정가격이 원가계산 등을 통해 산정한 추정가보다 낮게 결정되고, 이에 따라 낙찰하한금액도 낮아지면서 실제 낙찰금액도 낮아지는 등 저가 계약의 폐해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낙찰금액을 과도하게 줄이게 되면 품질시공 확보 또한 어렵다는 게 공사업계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사업대금 늑장 지급으로 사업 수행 업체들의 곤란을 야기하는 사례도 여전하다.

강원랜드의 경우 지난 2017년 9월 '강원랜드 클라우드센터 구축 용역(재공고)' 계약을 체결해 준공 후 2018년 4월 17일 기성금 14억9359만6000여원의 지급을 청구받고도 내부 보고 및 결재 지연으로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대가지급기한인 같은 해 4월 24일보다 34일이 지난 5월 28일에야 기성금을 지급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강원랜드 등 10개 공공기관에서 정보화사업을 실시하면서 총 4건에 대해 모두 153억원 가량의 사업대가를 짧게는 6일에서 길게는 37일까지 지연 지급했다고 밝혔다.

코레일네트웍스는 한술 더 떠 위법적인 내부규정을 운용했던 것으로 감사 결과 폭로됐다.

코레일네트웍스는 2013년 10월 '계약업무처리지침 제70조'를 제정하면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58조와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용역계약일반조건' 제27조 및 '물품구매(제조)계약일반조건' 제2조와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계약상대자에게 대가지급 청구를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대가를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는 법률에서 정한 기한인 5일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결국 코레일네트웍스의 내부 규정이 법률을 무시한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코레일네트웍스가 수행했던 'VAN서버 및 미들웨어 구매' 사업의 경우, 계약상대방으로부터 대가지급 요청을 받은 후 대가지급기한인 5일보다 9일 지연 지급했음에도 자체 처리지침을 적용해 14일 이내에 정상 지급한 것처럼 처리하고 있었다고 감사원은 꼬집었다.

여기에 정보화사업 관련 작업장소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고 감사원은 덧붙였다.

부당특약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시공업체가 고통 받도록 내버려두는 행위도 문제다.

'건설산업기본법' 제38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르면 수급인은 하수급인에게 관계법령 등을 위반해 하수급인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발주자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인 경우 통보받은 하도급계약에 부당특약이 있을 때 그 사유를 분명하게 밝혀 수급인에게 계약내용 변경 등을 요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 한전 등 공공기관들이 최근 수년간 발주한 계약금액 상위 공사 및 물품구매 계약을 확인한 결과, 공사 중 발생되는 폐기물 처리 책임을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등의 부당특약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공공기관들은 부정당업자를 배제하지 않는 위법도 서슴지 않았다.

한전KPS는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고 있는 부정당업자와 수의계약을 맺었다가 감사원 감사 결과 적발됐다.

감사원은 한전KPS가 이 밖에도 수년간 부정당업자로 제재 중인 23개 업체와 101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감사원은 한전KPS 사장에게 입찰참가자격을 제한받고 있는 부정당업자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없도록 계약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 통보 조치했을 뿐이다.

이는 비위 관련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거나 해당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제도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제도 개선 노력…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에 따라 공공기관장에게 불공정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하고 있다.

감사원은 임의로 추정가를 낮추는 기관들에 대해 내부 계약규정을 개정하라고 통보했다.

입찰을 위한 예정가격 결정 시 국가계약법 제9조 제1항 등에 따라 원가계산 등으로 산출한 금액을 특별한 사유 없이 감액해 기초금액을 산정하거나 기초금액 이하에서 복수예비가격을 산정함으로써 예정가격이 감액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계약관리절차서 및 소액수의계약 운용지침'을 개정, 예정가격 산정 시 기초금액을 감액하던 관행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당한 특약을 방치하는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감사원은 부당 특약을 내버려둔 기관들에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수급인에게 내용 변경을 요구하는 등의 적정한 조치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원도급보다 높게 설정된 지체상금률·하자보수보증금률을 원도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변경하도록 요구하는 등의 적정한 조치방안을 강구하라고 기관장들에게 통지했다.

이 뿐만 아니라 앞으로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수급인으로부터 통보받은 하도급 계약의 내용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에서 정하고 있는 부당한 특약이 있는지를 철저히 확인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사원 조치들은 결국 발생한 불공정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후적 조치를 요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공기관 입찰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들은 "공공 발주 사업에서 불공정 행위 발생 시 담당자를 엄하게 징계하는 규정이 없고 불공정 행위 기관에 대한 패널티도 크지 않다"며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는 법률과 제도가 선행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업체들은 발주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의 도입을 언급하고 있다.

발주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로 발주자의 업무 수행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건설공사시공평가제도를 통해 발주자가 시공자를 평가하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평가 제도·체계를 만들어 대등하고 공정한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선도하는 공공 발주처와 담당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도 언급되고 있다.

이 같은 제도가 활성화되면 공공기관부터 스스로 문제점 시정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공공 발주기관과 계약 담당 공무원이 공정한 계약 업무 처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미비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발주자의 불공정 사례를 처벌하는 금지적(negative) 방식만 강조하게 되면 개선의 노력보다 은폐 등을 통한 제재의 회피에 집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건산연은 인센티브제 도입 등 건설적(positve)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공 발주자가 선제적으로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거나 앞서 제안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를 통해 우수 발주자로 선정된 경우, 공공기관 평가에 가점을 주거나 해당 계약 담당 공무원에게는 승진 가점을 주는 등의 공공 발주자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 환경의 조성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선방안은 결국 입법부인 국회에서 법률 제·개정을 통해 처리되고 이후 행정부의 시행령·규칙 등으로 구체화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공공기관들에 의해 각종 불공정행위를 당해온 업체들은 오는 4월 총선으로 새롭게 구성될 국회에서 각종 불공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개선책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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