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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삶과 죽음의 무게, 땀의 무게
[창가에서] 삶과 죽음의 무게, 땀의 무게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0.05.12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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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늘 살아있었다.”

김훈 소설, ‘칼의 노래’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문장에는 살기 위해 늘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의 절박한 심정이 절절이 묻어난다.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절박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바다 위 함선에서 백병전을 펼쳤을 조선시대 수군(水軍)이나 초연결 지능정보화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현대인이나 삶과 죽음의 절박함 앞에서는 평등하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근로자의 삶과 죽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당일 갑작스럽게 발생한 대형화재로 3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고 10명이 크게 다쳤다. 사상자(死傷者) 중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건물 2층에서 함께 일하던 부자(父子)는 갑자기 불이 나자 1층으로 뛰어내렸다. 치솟는 불길에 출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탈출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숨지고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그들은 땀의 숭고한 가치를 믿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정직하게 땀을 흘리면 밝은 내일이 열릴 것이란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 희망엔 죽음의 그림자나 두려움이 깃들지 않았다. 그러나 화마는 무참하게도 그 희망을 거두어갔다.

아직 정확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는 현장의 정황을 짚어보면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안전관리가 사고의 단초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예로, 사고현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에서 3차례나 주의를 받고도 그대로 공사를 진행했다. 현장엔 안전관리자도, 체계적인 안전교육도 없었다.

수익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춘 다단계 하도급 구조도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간발주처인 A사는 B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B사는 배기관공사 등을 협력업체인 C사에 맡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C사는 다시 D사에게 관련공사를 하도급 줬다.

끝단의 하도급업체가 적정사업비를 확보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정해진 범위 안에서 여러 비용을 충당해야 하고 공기도 맞춰야 하니 정상적인 안전관리는 뒷전으로 밀렸을 터….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사고는 영락없는 인재(人災)다. 안전을 불요불급한 비용의 문제로 보는 물신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아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안전에는 결코 무임승차가 있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공사를 수주한 원도급 업체가 제 몫을 챙긴 뒤 하도급업체에게 터무니없이 싼 값에 일감을 넘기는 불공정한 도급구조도 청산해야 한다.

안전은 삶과 죽음의 절박함과 맞물려 있다. 그 무게를 함부로 재는 건 매우 불경하다. 땀의 무게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고단하기만한 우리 삶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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