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2-03 19:25 (목)
[단독]방송장비 공공 입찰, 외산 특혜 논란
[단독]방송장비 공공 입찰, 외산 특혜 논란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0.09.01 1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비 크기·무게까지 특정
국내 사업에 해외 인증 요구도

설계 용역부터 '외산 알박기'
국산 공정경쟁 기반조성 절실

최근 공공 분야 방송장비 구매·설치 입찰 과정에서 발주처들이 설계서를 통해 특정 외산 장비를 요구하는 등의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방송장비 업계는 공공 입찰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발주처들이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세종시, 부산시 등 주요 지자체 및 해당 지역 공공기관의 방송장비 구매·설치 사업 입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 발주처가 설계서 등을 통해 특정 해외 업체 장비를 요구하는 등의 불공정 사례가 무더기로 확인됐다.

수도권 지자체 한곳이 최근 사전공개한 방송장비 설치 사업 설계설명서(시방서)가 한 예다.

해당 설계설명서를 살펴보면, 무정전전원장치(UPS) 항목에서 해외 기업 A사의 특정 제품 모델이 명시돼 있다.

조달 관련 규정에서는 장비의 구체적인 규격·품질·성능 등을 설계서에 표기하기 곤란한 경우 특정 제품명을 명시하고 이와 동등 이상인 대체품을 공급하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UPS의 경우에는 배터리 용량 등의 장비 성능을 객관적·정량적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도 특정 제품을 명시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해당 설계설명서는 UPS 장비의 크기와 무게까지 특정하고 있어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방송장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요구는 장비를 랙 캐비닛에 설치 가능한지 확인하는 수준을 벗어난 것"이라며 "제시된 크기·무게는 특정 업체 제품과 일치하는데, 이는 해당 외산 제품을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국내 인증과 별개인 해외 인증을 요구하는 문제도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발주처에서 장비에 대해 UL의 인증을 요구했던 입찰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UL은 미국에서 전선 및 케이블, 정보통신기기에 대해 제품 안전시험 및 인증 발행, 환경 시험, 제품 성능 시험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국내 공공 사업에서 KC 인증이 아닌 북미지역 인증을 요구한 것은 외산 장비 도입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예규인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에도 위반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방송장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설계를 수행하는 업체가 특정 장비에 유리하도록 사업을 설계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방송장비나 해당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담당자가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발주를 내는 것도 문제를 키우는 이유라고 짚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인 '공공기관 방송장비 구축·운영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3억원 이상(추정가격 기준)의 방송장비 구축 사업에서는 사업별로 규격서 초안, 사업 참여 희망자의 의견 등을 반영해 규격서를 확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규격서 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해야 한다.

이 때 공공기관은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기관, '지방공기업법' 상의 지방공기업,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국·공립학교, 고등교육법 제3조에 따른 국·공립대학 등이다.

하지만, 추정가가 3억원 미만의 사업들은 이 지침의 적용을 받지 않아 설계서 등에서의 문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3억원 이상의 사업인 경우에도 불공정 입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상반기에 추진되지 못했던 사업들이 하반기에 한꺼번에 발주되는 통에 설계서 검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불공정 입찰 행위로 인해 발생한 예산 낭비도 문제다. 동일 성능의 국산 제품보다 값비싼 외산 장비를 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 방송장비 구매·설치 사업의 불공정 문제는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난 2018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발생한 마을방송장비 납품 비리 사건의 경우 경찰 수사 결과 특정 업체와 공무원 간의 조직적 공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4월 충북 영동군에서는 특정 업체가 마을방송시설 현대화 사업을 따내도록 불법 개입한 6급 공무원이 해임 조치됐다.

방송장비산업센터(KOBEC) 관계자는 이 같은 입찰 불공정 문제에 대해 "방송장비 구축·운영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으로, 입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목적에 맞는 설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KOBEC이 수행하는 '공공기관 방송장비 구축·운영 전문가 컨설팅 제도'와 '입찰 실무자 교육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입찰 불공정 해소 및 예산 누수 방지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방송장비 업체들은 "공공 분야 방송장비 입찰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원칙이 무너진다면 국내 중소규모 방송장비 제조 기업들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며 "국산 장비에 대한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외산이든 국산이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