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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고수열전
[창가에서] 고수열전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0.09.0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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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편집본부장

진인(塵人) 조은산이란 필명을 쓰는 30대 남성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린 상소문 형식의 ‘시무 7조’가 공개되면서부터다.

조은산의 글은 유려하다. 강약을 조절하며 논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가는 힘이 돋보이고, 살아 숨 쉬는 듯한 비유와 풍자로 상대를 찌르는 기술이 뛰어나다.

조은산은 인천에 사는 박봉의 월급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작가나 비평가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그가 전업작가는 아닐지언정, 오랜 시간동안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낱말을 캐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왔으리라는 걸. 결국 그는 글쓰기의 고수다.

조은산의 시무 7조에 일침을 가한 림태주 시인 역시 또 다른 글쓰기 고수 중 한명이다.

림 시인은 이미 ‘어머니의 편지’라는 글로 화려한 필력을 과시한 바 있다. ‘어머니의 편지’엔 신산(辛酸)한 삶의 고통을 견디며 해탈의 경지에 이른 촌로(村老)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림 시인은 조은산에게 “너의 문장은 화려했으나 부실했고, 충의를 흉내 냈으나 삿됐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두 고수는 서로의 펜과 펜을 부딪치며 잉크가 낭자한 싸움을 벌였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 코로나19의 우울과 공포에 짓눌려 있는 세간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그들 모두 승자다.

알고 보면 세상엔 글쓰기 고수들이 참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물으려 할 것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지만 글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법?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글은 그냥 쓰는 것이다 ‘잘’ 쓰려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힘에 눌려 사고의 근육이 뭉치면 글은 더 엉키기 마련이다. 일단 한 글자, 한 문장을 종이에 적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빈약하고 보잘 것 없는 글이 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그 덩어리가 모여 꽤 많은 양(量)이 되고, 어느 새 좋은 질(質)로 변화한다. 철학의 변증법에서 말하는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하면 타당할까.

베스트셀러 ‘강원국의 글쓰기’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중은 없다. 지금만 있을 뿐이다. 기다린다고 써지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야 한다. 영감은 누구에게나 마구 떠오르지 않는다. 직관·통찰·혜안 역시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보통신기업 연구실의 기술개발자를 생각한다.

막막하겠지만 그들 역시 한걸음씩 가야 한다. 최적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그 고된 걸음들이 모여 4차 산업혁명 시대, 지능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신기술이 탄생한다. 그 신기술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꺼져가는 경제와 나라를 살린다.

오늘도 후미진 연구실에서 적막과 고독에 맞서고 있을 기술개발자의 값진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고수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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