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달 제품 바가지 문제, 사후약방문 이제 그만
[기자수첩] 조달 제품 바가지 문제, 사후약방문 이제 그만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1.03.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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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하 기자.
박광하 기자.

국내 공공조달 시스템의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아직까지도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달청 종합쇼핑몰에서 시중가격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팔리던 방송장비 사례가 그렇다. 디지털 오디오믹서 제품인데 민간 쇼핑몰에서 270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것이 조달청 종합쇼핑몰에서는 무려 930만원에 팔렸던 것이다. 조달청은 해당 제품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에 등록돼 팔리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방송장비 구입 기관들은 조달청이 등록 제품에 대한 가격 확인을 소홀히 해 발생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조달청이 조달 물품 등록 전 등록 신청 업체와 가격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걸러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달청 웹사이트의 '제도안내' 항목을 보면 조달청이 가격협상 과정을 시행해야 하는 것으로 안내돼 있다.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는 게 해당 제품을 구입한 기관들의 항변이다. 자신들도 일종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장비 설계·공사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이들 전문가는 "제품을 구매한 기관 담당자들이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기관이 해당 장비가 민간 쇼핑몰에서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더라면, 종합쇼핑몰을 통해서 3배가 넘는 가격에 구입하는 대신 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부 전문가는 3배가 넘는 가격을 주고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적인 커넥션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다만 의혹을 입증할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된 바는 없다.

해당 제품이 조달청 종합쇼핑몰에 등록된 이후 수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20여곳이 넘는 기관이 해당 제품을 총 25대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들이 낸 세금은 종종 이런 식으로 쓰인다.

어떤 정치가는 "나라에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도둑이 많아서 부족해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보화 시대 이전에는 '도둑질'이 일어나도 이를 신속하게 적발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도둑이 있었고 도둑질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한 오늘날 도둑질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각종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조달청에 제품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각종 ICT를 이용하면 시중가와의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다. 제품의 외관이나 모델명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것을 인공지능(AI)이 민간쇼핑몰에서 찾아내는 방식으로 가격 비교를 간단하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십만건이 등록된 조달 등록 물품을 사람이 개별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ICT를 이용한 비교·확인이 필요하다.

조달청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으로 등록된 조달 제품을 찾아내 등록 취소 처리하는 '사후약방문' 방식에 의존하지 말고, 제품 등록 신청 과정에서부터 ICT를 활용해 문제를 걸러내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조달 시스템을 개선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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