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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공포에 숨죽인 공사현장…‘채찍’만이 능사 아니다
‘처벌’ 공포에 숨죽인 공사현장…‘채찍’만이 능사 아니다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2.02.12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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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처벌법 문제점 진단

사고책임 대표자 처벌 땐
일순간에 회사 문닫을 판
범법자 늘어나는 악순환 우려

다단계 도급으로 공사비 삭감
충분한 안전관리비 확보 난항

기업 의견 경청· 보완입법 시급
고의 없을 땐 면책 규정 둬야

[정보통신신문=이민규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기업 스스로 철저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춰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자는 게 법 제정의 기본취지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지 않거나 산업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선 기업의 경영자들은 법 시행에 강한 우려와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이 법이 경영책임자에 대한 강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법에 명시된 안전관리 규정도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중대재해가 발생해 회사 대표자가 처벌을 받게 되면 일순간에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공포가 번지고 있다.

 

■ 처벌 범위 넓고 수위 높아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처벌대상은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수위도 높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주로 사고현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에 머물지 않고 사업전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 등을 강하게 처벌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이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더욱이 징역과 벌금을 함께 부과할 수도 있다.

똑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생기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했을 때도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양벌규정도 공포대상이다.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위법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법인 또는 기관에 대해서도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사망사고가 난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근로자가 다치거나 병에 걸린 경우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해당 법인 또는 기관에 부과한다.

중대재해처벌은 상시 근로자가 50명 이상인 사업장 또는 공사금액이 50억 원 이상인 건설현장부터 적용된다. 5명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나 50억 원 미만 공사현장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 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정보통신공사의 경우 각 사업장(공사현장)의 공사금액을 기준으로 법 적용시기를 판단하게 된다. 다만, 개인사업주의 경우 공사금액(또는 상시 근로자 수)에 관계없이 2024년 1월 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 처벌 피하려 공사 중단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상당수 시공업체는 ‘살얼음판’ 경영을 하고 있다. 법 시행 후, '처벌 1호' 기업으로 기록되는 위험과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는 기업까지 등장할 정도다. 무리하게 사업을 지속하다 전과자가 되느니 차라리 사업을 접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단계 도급구조로 이뤄지는 시공현장에서 이 법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원도급자가 발주자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후 하도급과 재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공사비가 삭감되는 게 일반적이다. 원도급자가 당초 책정된 공사금액의 일부를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공제하기 때문이다. 이에 하도급자인 중소 시공업체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충분히 확보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급자인 중소 정보통신공사업체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부당하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갑질인 셈이다. 적정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한 하도급업체가 안전관리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니 회사 경영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공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로 산재예방이란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경영자들이 강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사고는 사고대로 되풀이되고 범법자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회의론이 제기된다.

수도권에서 정보통신공사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어긋나는 사고가 나면 중소 공사업체는 더이상 존립하기 어렵다”면서 “일선 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법 규정의 합리적인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통신공사업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어려운 지경에 직면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인력과 자금이 넉넉한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기업의 경우 최고안전책임자를 선임하고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강구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한 일감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에서 사업장 안전관리를 위해 대규모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 규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형식적인 서류 작업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체계적인 컨설팅이나 노무·법률 상담조차 받지 못한 채 한숨만 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개최한 현장 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중소기업의 혼란과 두려움을 전하고 법에 대한 보완을 촉구했다. 주보원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무조건 처벌을 강화하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는 법 때문에 중소기업의 우려가 크다”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이호석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시설개선과 전문인력 채용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고 국회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 가능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징역의 하한을 두는 등 형사처벌이 강한 법임에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은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객관적인 문제”라고 짚었다.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보완이 시급하며 최소한 정부 컨설팅 등을 활용해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최선을 다한 중소기업의 경우 의무이행 노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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