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법학자이자 대법관인 올리버 웬들 홈즈(Oliver Wendell Holmes)는 “세금은 문명사회의 대가(Taxes are what we pay for civilized society)”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개인이 문명사회로부터 받는 혜택에 대해 제값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홈즈의 말처럼 세금은 국가 존립의 근간으로서 국민의 삶을 지탱하고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기초자산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무를 진다. 거창하게 ‘조세 법률주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소득에 비례해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은 진정한 애국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에게, 세금은 반갑지 않은 불청객과도 같다. 피하고 싶지만 떨쳐내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Nothing is certain, except death and taxes)”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다. 세금에 대한 생각의 실타래 안에서 중심을 잡고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정부와 정치권의 중요한 책무다. 그 책무를 올바르게 이행하려면 히말라야의 고봉에 오르는 등반가만큼 노련함이 요구된다.
여러 납세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수 과제다. 납세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인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조세정책 방향은 무엇일까.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기업 CEO 252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에 바라는 조세제도 개선과제’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CEO 10명 중 7명이 ‘경제성장 지원’(70.2%)에 방점을 찍었고 △사업구조재편 지원(16.3%)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위한 세수확보(6.7%)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중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과제로 ‘법인세 등 기업조세 세율인하’(27.8%)를 1순위로 꼽았고 △투자 창업 등 세제지원 확대(24.7%) △과도한 기업세제 정비(19.8%) 순으로 응답 비중이 높았다.
대한상의는 가장 효과적인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물었다. CEO 252명 중 178명이 ‘경제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70.6%)를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답한 반면, ‘증세 통한 세수 확보’ 방안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기업의 꾸준한 성장이 최고의 복지정책인 만큼 대증요법식 기업 증세를 하기보다는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조세정책을 전개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5월 10일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다수 기업인이 견해를 밝힌 것처럼 새 정부는 기업의 성장을 적극 지원하고, 그 성장의 토대 위에서 세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조세정책을 펼쳐주길 기대한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시장에서 나오고 안팎의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최고의 백신은 기업활력 회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막연한 세금 퍼붓기나 재정 만능주의로는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기 어렵고 분배의 악화를 막지 못한다. 최근 몇 년간 세금을 쏟아부을수록 소득 격차가 더 커졌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부자 표적 증세, 서민 감세라는 이분법적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