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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통계는 취한 사람 옆 가로등
[창가에서] 통계는 취한 사람 옆 가로등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2.03.13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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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논설위원.
이민규 논설위원.

지난해 건강보험(건보) 재정의 당기수지가 2조8229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건보 누적적립금은 20조2410억원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이런 내용의 건보 재정현황을 공개했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문재인 케어(문케어)’로 불리는 현 정부의 국민의료비 부담 완화 정책에 대한 확연한 온도차를 반영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민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문케어로 건보 재정 파탄난다던 야당 의원님들께’라는 글을 올렸다. 문케어로 국민들 의료비 부담은 낮췄고 건보재정은 튼튼하다는 게 글의 요지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는 “사회보험료가 남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국민의 고혈을 짰다는 얘기”라며 “박근혜 정부 말기에 문재인 정부에 넘겨준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2017년 기준 20조8000억원이었다. 뭐좀 알고 쓰자”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건보 재정의 당기수지와 누적적립금은 일종의 통계다. 통계는 명확한 수치를 통해 표출된다. 계산방법에 명백한 오류가 없다면 통계는 팩트다. 숫자에 나타난 명확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계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나 주관적인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는 꼭 피력하고 싶다. 보는 관점에 따라 통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건보재정에 대한 통계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종합하면 건보재정 흑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병원을 찾은 환자가 줄어든 덕분이다. 병원진료 환자는 2019년 4833만 명에서 2020년 4719만 명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엔 4766만 명으로 더 줄었다. 최근 2년간 건보재정 현황을 비교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도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2021년을 기준으로 볼 때 전년대비 수입(7조1000억원)과 지출(3조9000억원)이 모두 늘었으나 지출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둔화돼 재정수지가 개선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산업재해에 관한 통계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 달간 산업재해로 인해 숨진 사람은 모두 42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명이 줄었다. 하지만 통계상의 수치로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법 시행 초기, 예상치 못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여러 시공현장에서 임시휴업에 들어갔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재발생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조사 및 통계치 산출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응답자가 수요조사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구매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면 해당 조사를 신뢰하기 힘들다. 그렇게 산출한 통계로 올바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의사가 쓰는 칼은 환자를 살리지만 강도가 든 칼은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통계의 기본속성도 엇비슷하다. 통계상 수치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가치판단과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윈스턴 처칠은 “통계는 술 취한 사람 옆의 가로등과 같아서 빛을 비추기보다 취한 몸을 기대는 용도로 쓰인다”고 했다. 통계를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통계로 세상을 환하게 밝힐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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