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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사업 발주기관, 제안서 평가위원 자체 모집 불공정 논란
공공사업 발주기관, 제안서 평가위원 자체 모집 불공정 논란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3.01.05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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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웹사이트에 공고 게시
직접 찾아 확인하기 어려워

입찰업체 부당 개입 가능
금품 제공 등 불법 우려

실용음악 가르치는 교수가
음향설비 평가위원 맡기도

공정성·객관성 확보 급선무
협상계약 실무 이론 교육자료. [자료=조달청]
협상계약 실무 이론 교육자료. [자료=조달청]

[정보통신신문=박광하기자]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설비를 구매·설치하는 다수의 공공사업에서 제안서 평가위원을 자체 모집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달청에서 구성·운영하는 평가위원 풀(pool)을 활용해 제안서를 평가를 수행하는 것과 달리, 공공발주처에서 평가위원을 자체 모집하는 경우 평가위원과 사업 참여기업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ICT분야에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비전문가가 평가위원을 맡게 되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발주처에서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안서 평가위원을 자체적으로 모집, 선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후 발주기관의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에 따라 입찰 참가기업들이 제안서를 제출하면, 선정된 제안서 평가위원들이 이를 심사해 점수를 부여한다.

평가위원 선정 및 제안서 평가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조달 평가' 방식은 사전에 전문 평가위원 풀을 구성한 뒤, 이들 중에서 무작위로 평가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발주기관에서 자체 운영 웹사이트를 통해 평가위원을 모집, 선정해 제안서를 평가하는 '자체 평가' 방식도 있다.

ICT 관련 기업들은 자체 평가 방식에 대해 평가위원과 기업 간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발주처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평가위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평가결과가 왜곡되는 사례가 발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조달 평가 방식이라면 조달청에서 무작위로 평가위원을 선정하게 돼 유착이 발생하기 어려운 반면, 자체 평가 방식을 따를 경우 입찰 참가기업이 평가위원 모집·선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체 평가 시 발주기관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평가위원 모집에 관한 공고문을 게시하게 된다. 이 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해당 공고를 직접 찾아 읽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공고란만 해도 수천 곳에 달하는 만큼,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평가위원 모집공고가 올라오는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공고 사실이 전파되고, 그에 따라 평가위원 신청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교수, 전문가에게 평가위원으로 신청해달라는 청탁을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달 평가위원 풀에 등록된 수많은 전문가보다는 평소 '인맥 관리'를 하는 십수명에 집중하는 게 청탁 기업 입장에서는 경제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같은 평가위원 신청 청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포천시가 지난해 12월 14일 발주한 '포천반월아트홀 리모델링 무대음향 구매설치' 사업에서 제안서 평가위원을 자체 모집하자, 해당 사업에 참여하려는 한 기업이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 수도권 소재 D대학 교수에게 평가위원 참여 청탁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쳤다. 연락을 받은 교수는 해당 기업의 요구를 즉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천시 사업 관련 평가위원 참여 청탁을 알린 제보자는 통화에서 "조달 평가를 하게 되면 조달청에서 무작위로 평가위원을 선정하게 돼 유착이 발생하기 어렵다"며 "반면, 자체 평가는 기업이 평가위원 신청을 청탁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ICT 학계·산업계 전문가들은 이번에 드러난 청탁 사건은 고질적인 평가위원-기업 간 유착 문제의 일부가 확인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이번 사업에서 평가위원과 입찰 참여기업을 대상으로 통화 및 금융거래 내역 등을 조사해 유착 사실이 드러날 경우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제안서 평가를 위해서는 자체 평가 방식을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포천시는 조달 평가 신청 기한 이후에 사업을 진행하게 돼 부득이하게 자체 평가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왔다.

국토교통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특사경)가 지난해 12월 5일 발주한 '철도방범 CCTV 및 철도보안정보센터모니터링 시스템 개량' 사업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사업에서도 특정 기업이 학자·기술전문가들에게 평가위원으로 참여할 것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이하게도, 제보자는 자신이 소속된 기업이 이 같은 종용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 평가 시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명이라도 더 많은 평가위원 신청자를 확보해야 유리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평가위원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금품이나 향응 제공 등의 문제가 일어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제보자는 입찰 공고 전에는 철도특사경 담당자가 조달 평가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하겠다고 했는데도, 느닷없이 자체 평가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철도특사경은 조달청이 자체 평가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하라고 권고해 이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평가위원이 제안서 평가에 참여하는 것 또한 자체 평가의 문제점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영남지역 기초지자체가 추진했던 음향설비 구매설치 사업이 한 예다. 이 사업에서 발주기관은 자체 평가 방식으로 제안서 평가를 했는데, 이때 음향설비에 대한 공학적 지식이 없는 비전문가가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에서 실용음악 강의를 하는 교수인데, 관련 업계에서는 "가수 활동을 하는 해당 교수는 ICT 설비의 설계, 시공 역량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달 평가 방식은 조달청에서 장기간에 걸쳐 평가위원 명단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전문성 면에서는 자체 평가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처럼, 자체 평가를 두고 논란이 일자 채해수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는 "무경력자가 평가위원이 되면 ICT장비에 대한 기술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기술평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며 "조달청 평가위원시스템 활용이 공정한 평가제도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현재 각 공공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자체 평가위원 모집 공고를 개선해 조달청에서 통합 자체 평가위원 모집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조달 평가나 자체 평가에 참여하는 평가위원들이 사전에 일정 시간 평가 관련 교육을 이수토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나아가, 발주기관이 부득이하게 자체 평가를 실시할 경우 해당 사업분야의 비영리 협·단체 및 학계에 평가위원 추천을 요청하는 등 입찰 및 심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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