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가를 찾아다니며 자기 앞날이 어떻게 풀릴 것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귀인(貴人)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귀한 사람이다. 사회적이 영향력이나 재력 또는 능력이 남다른 사람이 귀인이다.
장차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므로 하고자 하는 일에 속도가 더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어려움에 빠져 헤어날 길이 막막하던 일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경우도 될 것이며 그밖에도 긍정적으로 사태가 전개되어 삶이 도약하는 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니 어쨌거나 '귀인상봉(貴人相逢)'이란 말은 귀가 번쩍 뜨일만한 희소식이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네 말대로 이번에 진짜 귀인을 만났었네!"
사업차 지방 출장을 다녀온 지인의 호들갑이다. 출장을 가기 전에 찾아 왔기에 귀인의 도움을 받게 될 운수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대로 되더라는 거다.
손수 운전을 해서 출장지로 가는 길이었는데 외진 산길을 지날 때 데 느닷없이 차가 덜컹거리더니 엔진이 멈춰 버렸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시동이 걸리지 않더란다.
주변에 산이 워낙 높아 그런지 휴대전화도 먹통이 되어 정비사를 부를 수도 없고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라 시커먼 산 그림자가 시시각각 밀려오는 상태인데 오가는 차량마저 하나 없으니 가뜩이나 겁이 많은 그로서는 간이 콩알만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참을 끈 떨어진 망건처럼 차 안에 웅크린 채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기적처럼 승용차가 한 대 나타나더란다. '아이고 살았다' 싶어 가까운 정비 업소까지 편승을 부탁할 요량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이윽고 다가온 차가 멈추더니 이목구비 번듯한 젊은이가 내리더란다.
"그 청년이 나한테 몇 마디 묻더니만 군말 없이 보닛을 열고 한참동안 여기저기 손을 댄다 싶었는데 허허! 거짓말처럼 시동이 걸리는 거 있지?" "정비기술자였구먼!" "그랬나봐! 하도 고마워서 얼마간 사례라도 할 양으로 내가 지갑을 꺼내자 극구 사양하면서 바람같이 가버리는 거야!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물어 볼 짬도 안 주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던 귀인이 바로 그 청년일 것이다?" “맞아! 자네가 그랬지? 이번에 귀인을 만날 거라고…! 그게 그 젊은이였어! 생각해 봐. 그 친구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그 깊은 산중에서 공포의 밤을 보낼 수밖에 더 있나? 게다가 내가 겁이 좀 많은가?"
하긴 그 정도면 명실상부한 귀인이다. 그런데 수능이나 그밖에 입사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부모 중에도 귀인을 찾는 예가 많다. 그럴 때마다 불현듯 방정맞은 생각이 스쳐간다. 설마 휴대폰이나 무전기를 이용하여 수험생에게 답을 일러주는 '첨단 부정행위'에 나서 줄 '비딱한 귀인'을 찾는 건 아니겠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