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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룡의 다사다언(多思多言) 제 18화 우연이냐 필연이냐
공문룡의 다사다언(多思多言) 제 18화 우연이냐 필연이냐
  • 한국정보통신
  • 승인 2007.03.26 10:10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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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서 평창으로 가는 20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왼쪽으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길 옆에 바짝 다가선 틀로 길게 도열한 곳이 나타난다.

절벽의 높이도 상당해서 가까이선 아무리 목을 뒤로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가팔라진 바위 절벽을 찬찬히 살펴보면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틈새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본시 그처럼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곳에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음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던 나무의 씨앗이 공교롭게도 절벽 틈새에 떨어져 한 줌도 안 되는 흙을 밑천 삼아 거기서 싹이 돋고 질긴 생명의 뿌리를 내린 것이리라.

어쨌거나 생장환경이 워낙 척박하다 보니 수십 년의 수령(樹齡)을 헤아리면서도 키는 고작 두세 뼘 남짓이고 어울리잖게 굵은 밑동을 하고 있는 틀이 영락없는 분재(盆栽)깜이다. 그래서 왕년에는 돈 깨나 있는 사람들이 일꾼들을 시켜 기십 년 넘게 절벽 틈새에서 힘들게 자란 나무들을 몰래 캐 가는 일이 많았다고 들었다.

평지에서 무탈하게 하늘을 향해 쑥쑥 크는 나무와 절벽 틈바구니에서 악전고투하는 식으로  살아내야 하는 나무를 비교하면 도대체 어떤 인연이 작용했기에 같은 씨앗이면서도 다른 운명이 부여되었는지 궁금증이 치민다. 우연(偶然)인가? 아니면 필연(必然)인가?

그런데 답이 없다. 아니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운명이 우연이나 필연이냐 라는 명제를 놓고 왈가왈부 쟁론을 벌인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매번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식으로 목청만 돋우다 걷어치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 중 누구도 운명(運命)이 결정되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임을 주장하지만 필연적인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반대로 필연을 주장하면서도 우연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거다.

다양한 부류의 사주들을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람의 운명이 우연보다 필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당사자의 의견이나 바람은 철저히 배제되는 차원인 출생  순간이 그 사람의 사주팔자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날 다른 시간 마다하고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태어나야만 했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니 말이다.

정말 답답하다. 과연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그 어떤 존재가 있어 사람마다 다른 운명을 부여하는지 아니면 절묘한 우연의 연결고리가 불확실성의 기반 위에서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영고성쇠를 주관하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으니 무력감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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