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포괄적 보호
산재 예방능력 따져 도급
건설 발주자 안전수립 의무
근로자 사망 시 징역 하한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7일 광화문 S타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공청회를 열었다. 1990년 이후 28년만에 이뤄지는 전면적인 개정에 사업주, 근로자, 산업안전보건분야 종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 적용 '근로자' 아닌 '일하는 사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11월 "골프장 캐디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지위, 노무제공의 방법, 성격 및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종속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므로 이들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법률을 제·개정해 해결하라"는 취지로 근로기준법 일부조항 헌법소원심판청구사건(2015헌바413)에 대해 각하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산안법 개정 추진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바로 현행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람'으로 변경된 것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뿐만 아니라 향후 다양한 계약관계 등에서 보호대상의 확장성을 고려해 '일하는 사람'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이익 얻는 자가 책임도 져라
정부는 사업주가 책임을 더 무겁게 지도록 했다. 고용부가 내놓은 안에는 사업주인 대표이사 등이 매년 회사 전체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도급인의 책임도 강화된다.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책임을 부담하는 범위를 △도급인의 사업장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에서 수급인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로 확대하고, 도급인이 수급인 근로자의 작업 장소 등 위험에 대해 지배·관리권이 있다면 도급의 유형, 위험장소, 사업목적 여부 등에 관계없이 수급인 근로자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했다.
도급인이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 업체를 선정해 도급해야 하는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도 담겼다.
■건설공사 발주자 책임 강화
건설공사의 계획·설계·시공 등의 단계에서 공사기간·금액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바로 발주자다. 정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발주자들이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에 책임을 갖고 산재예방에 힘쓰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개정 계획안을 구체적으로 보면, 발주자는 공사계획 시 유해·위험과 저감대책을 위한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해 설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설계자가 이를 바탕으로 설계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면 발주자가 확인 후 이를 도급인에게 제공하고, 도급인에게 공사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도록 그 이행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강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발주자가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국가에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처벌 강화로 실효성 확보
정부는 그동안 사업주·도급인의 산안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약하게 이뤄져 그들이 안전·보건조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법정형에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명시하는 하한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법인에 대한 벌금형도 가중된다.
아울러 근로자가 산재로 사망하게 될 경우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자에 대해 법원이 유죄판결 시 최대 200시간의 산업안전보건교육 수강명령을 병과하도록 했다.
각계의 반응
■경영계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
도급금지, 하청근로자 산재예방 수단으론 부적절
특정작업의 계약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는 미국·영국·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급금지가 하청근로자 보호를 위한 예방대책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으므로 원·하청 간 안전관리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유해작업 수행업체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안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단지 '산재가 다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면 이는 작업중지 요건을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개정안이 법치주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당 요건을 법률로 엄격하게 정해야 한다
또한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 산재 사고에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토록 강제하는 조항은 과잉형벌의 소지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학계
권 혁 부산대 교수
안전을 비용으로 대체하는 한, 위험의 외주화 막을 수 없어
산업재해가 주로 하청근로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은 비용절감에 집중돼 있어 우리 사회가 안전을 비용으로 대체하는 한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근로자조차 보호할 수 없는 무능력한 하청업자가 외주에 뛰어들면서 사회적으로 위험이 전가되고 위험이 방치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급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주화를 하되 도급 업무를 자신의 근로자만큼은 잘 지켜낼 수 있는 업자들이 원·하청 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급을 제한하는 것은 도급 그 자체보다는 위험을 미숙련 작업자에게 도급으로 방치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근로자 작업대피하면 소송… 개정안으로는 보호 역부족
개정안을 적용하면 도급금지 적용대상은 22개 사업장의 852명 정도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이슈화하는 계기가 됐던 '구의역 김군'은 포함되지 않는 게 이번 개정안이다. 외주화가 주원인으로 산재가 다발하는 작업·조선업 재하도급 관련 조항을 보완해야 한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도 작업하러 들어갔다가 죽은 노동자들이 많다. 2013년 여수산단 폭발사고 때도 노동자가 가스방출 작업이 안됐다고 얘기했는데도 사업주가 작업을 지시해 들어갔다가 사고가 났다. 당시 원청인 대림산업은 작업허가서를 내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대림이 작업허가서를 발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도 합리적 이유로 작업대피를 하면 회사에서 징계에 손해배상까지 청구한다.이런 상황에서 개정안 조항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