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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이들을 위한 횡단보도는 없다
[기자수첩] 아이들을 위한 횡단보도는 없다
  • 차종환 기자
  • 승인 2020.07.10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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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고개도 못 가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온동네를 뛰어다니니 잡으러 다니기 바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차가 눈에 띄기만 하면 걸음을 멈추고 얼음처럼 서 있는 거다. 아빠가 옆에 있어도 그렇다. 괜찮다고 안심시켜도 긴장의 연속이다. 위험한 줄 모르고 날뛰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다. 알아서 차조심하는 우리 아들은 혹시 천재? 부모의 착각은 만국 공통이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다 잠시 쪼그리고 앉은 적이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제서야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약 1미터 남짓 눈높이에서 바라본 도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바로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밑에서 위로 바라봐야 하는 트럭의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 아찔한 것은 그 눈높이에선 운전자가 잘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운전자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아이들의 교통사고 소식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마냥 운전자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운전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조심하고 조심해도 안 보이는 건 안 보인다.

결국, 아이가 차를 피해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입이 마르도록 차조심해라, 신호등 잘 보고 다녀라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눈높이에선 높은 곳에 달린 신호등이 잘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물론, 의식을 해서 보니까 보이긴 하지만,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교통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성인도 이럴진대, 아이가 신호등을 잘 보고 다니길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길을 가다 한 번씩 쪼그려 앉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수많은 횡단보도, 심지어 학교주변, 어린이 보호구역조차도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교통시스템을 찾기 힘들었다. 간혹, 어린이를 위한 표지판이 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어른 눈높이다.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생색내기용이 아닌가 싶다.

지능형교통시스템을 논할 때 주로 등장하는 건 자율주행, C-ITS 등이다. 어린이를 위한 교통시스템은 언급되지 않는다.

굳이 지능형교통시스템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말은 곧 어린이용 교통시스템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구현 가능함을 뜻하기도 하다. 예로, 신호등 시야를 걱정할 필요없는 바닥 LED 신호등이란 게 이미 있다. 그런데 이 신호등이 설치된 곳은 손에 꼽는 수준이다.

문제는 관심이다.

아이는 미숙하니까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미숙하게 만드는 교통환경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연 1.1명 수준으로 OECD국가 중 9위에 속한다. 보행 중 사망자 수는 연간 0.57명으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율주행 자동차가 그리 중요할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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