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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패션 테러리스트
[기자수첩] 패션 테러리스트
  • 차종환 기자
  • 승인 2020.11.11 16: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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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의식주라고 한다.

알몸으로 태어났지만 일단 뭔가 입어야 사회 생활이 가능하고, 뭐 좀 먹어야 힘이 날 것이며, 잠자고 쉴 공간이 있어야 재충전이 되니 이 3요소가 꼽힌 것일 테다.

셋 중 하나라도 결핍되면 큰일나니까 필자도 수십여년을 되풀이해온 셈이다. 그만큼 반복했으니 무언가 나아질 기미가 보여야 하는 게 이치에 맞다. 다행히 어렸을 때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었고, 자취방을 전전하던 생활도 청산했다.

문제는 이놈의 ‘의’다. 아무리 이것저것 걸치고 입어도 소위 ‘잘 입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당사자가 별로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옷이란 그저 주요 부위를 가리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는 용도면 그만이지 않은가.

괴로운 건 주변사람이다.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라고 아무리 핀잔을 줘도 아내는 부지런히 옷을 사다 나른다. 하지만 옷이란 건 무릇,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 손에 잡히는 거 입고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아내가 백날 사다놓은 유행템을 무색케 하는 추리함이 묻어나리라.

필자가 별난 게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패션업계로선 이토록 옷에 무관심한 잠재고객의 눈을 트이게 하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독 패션업계가 ICT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 일환일 수 있겠다.

한 남성정장 업체가 ‘스피드팩토어’라는 것을 열었다고 한다. 팩토리와 스토어를 합친 말로, 매장에서 소비자의 주문을 받는 즉시 맞춤형 제작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3D바디스캐너, 증강현실 피팅시스템 등을 접목해 맞춤 정장이 3일만에 완성된단다. 왠지 모를 첨단스러움에 남자의 피가 끓지 않는가!

필자와 같은 패션 테러리스트들에겐 획기적인 서비스도 있다.

자신의 신체 치수, 취향, 구매이력 등을 제공하면 인공지능이 분석해 ‘새끈한’ 코디를 완성, 해당 옷을 보내준다고 한다.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유명 연예인들만의 특권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게 ICT 분야인데 그에 못지 않게 빠른 분야가 패션이니, 두 산업의 합이 잘 맞아 보인다. 아무쪼록 양 측의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돼서 지구상 모든 패션 테러리스트들이 발디딜 곳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문득, 대학시절에 룸메이트와 시비가 붙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주제인즉슨, ‘둘 중 누가 더 옷을 못 입는가’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설문에 들어갔는데 별로 표 차이를 보이지 않음에 서로 기분 나빠했던 기억이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사이에선 배우 공유 닮은 꼴로 통하는 녀석이 누가 봐도 추리한 런닝셔츠와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앞을 지나갔고 우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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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0-11-18 16:15:30
글이 재밌네요.기자님팬입니다.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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