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 초콜릿폰을 추억하며
[창가에서] 초콜릿폰을 추억하며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1.04.11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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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논설위원
이민규 논설위원

화사한 햇살이 비치는 커다란 원룸에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새하얀 침대 위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검은색 휴대폰에게 속삭인다. “너 정말 초콜릿이야? 셋 셀 동안 말해라. 하나, 둘, 둘 반….” 여인은 휴대폰을 톡 건드리며 다시 묻는다. “어느 손가락이게? 힌트. 제일 예쁜 손가락….” 그 순간 휴대폰 터치패드에 빨간 불이 켜진다.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어? 얼굴 빨개졌네. 너 나 좋아하는구나?”

16년 전,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광고영상을 기억하는지.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김태희를 앞세운 LG전자의 휴대폰 광고에 뭇 남성들의 가슴이 설렜다.

LG의 새 휴대폰은 2005년 11월 ‘초콜릿폰’이란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왔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에 무게는 81그램으로 가벼웠다. 키패드를 열기 위해 슬라이드를 밀어 올리면 붉은색 LED 조명이 강렬하게 빛났다.

초콜릿폰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출시 3주 만에 하루 개통 수가 1000대를 넘어서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로 판로를 확대하면서 누적판매 대수가 1500만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피처폰의 황금기였고 LG의 전성시대였다.

초콜릿폰으로 대박을 터뜨린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는 샤인폰과 프라다폰 등 공전의 히트작을 잇달아 출시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8년 2분기에는 모토롤라를 제치고 노키아와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시장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고공비행은 거기까지였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출시에 실기(失期)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혁신적 기능에 탄복한 소비자들은 LG의 피처폰을 외면했다.

스마트폰의 거센 조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대가는 가혹했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누적손실액은 5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났고 오랜 고심 끝에 오는 7월 휴대폰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초콜릿폰의 따뜻한 감성과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LG전자의 휴대폰사업 철수 소식은 먹먹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쓰라린 마침표는 국내 ICT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에서 영구불변의 강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소비자의 선택은 가을 서릿발처럼 냉혹하다는 교훈을 던진다.

세계를 호령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글로벌 기업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코닥이 그랬고 노키아와 소니가 그러했다. 시장의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신기술 개발을 위한 창의적 사고와 도전 없이는 낙오하는 게 기업의 숙명이다.

앞으로 시장 변동의 폭은 더욱 커지고 상수로 자리 잡은 경제위기는 우리 삶을 옥죌 것이다. 그 변화를 얼마나 빨리 읽어낼 수 있는가, 얼마나 과감하게 변신할 수 있는가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가슴 먹먹한 봄날 아침,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잘 가라 초콜릿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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