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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망 발전사 ①]국산교환기 1호 ‘TDX’ 이동통신강국 길 텄다
[통신망 발전사 ①]국산교환기 1호 ‘TDX’ 이동통신강국 길 텄다
  • 김연균 기자
  • 승인 2021.10.24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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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통신 불모지 ‘한국’
기술집약 ‘전자’에 정책 집중

전자교환기 국산화에 240억
정부·연구기관·산업계 ‘한뜻’
1960대를 지나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정보통신 불모지에 불과했다. 1983대 국산 기술이 도입된 전작교환기 시범운용이 본격화되면서 이동통신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찾기 시작했다. 사진은 금성전화기 제작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1960대를 지나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정보통신 불모지에 불과했다. 1983년 국산 기술이 도입된 전자교환기 시범운용이 본격화되면서 이동통신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진은 금성전화기 제작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정보통신신문=김연균기자]

전자교환기부터 5G 까지, 대한민국은 정보통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최근 디지털 뉴딜을 기반으로 전 산업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핵심 기능은 통신 인프라에서 파생하고 있다. 2030년 상용화가 예상되는 6G와 위성·지상망 통합 등 미래 기술개발 경쟁 속 한국의 위상과 역할도 정보통신망 발전사를 통해 가늠케 한다.

1970~1980년대 ‘정보통신·데이터통신’이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정보통신 분야 기술 빈국으로 수입에 의존했던 탓도 있지만 기존 정책이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에 역점을 두고 고도성장에 집중된 것도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간한 ‘대한민국 정보통신망 발전사’를 살펴보면 정보통신강국으로의 전환점은 1969년 마련된 ‘전자공업진흥기본계획’부터였다.

■국가정책 ‘전자’로 이동

상공부는 전자공업진흥기본계획을 통해 △1969~1971년 67개 품목 개발, 1억 달러 수출 △1976년 4억 달러 수출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전자공업은 자원을 적게 사용하는 저자원산업이며 저에너지소비산업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종사자 일인당 자본장비액이 낮은 반면 부가가치율은 높아 경제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한국의 섬유, 의류 중심 경공업 수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공업으로 전자공업 육성을 권해 왔다.

1976년 확정된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1981)은 전자산업으로의 국가정책 이동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이행 △전자부품 국산화 △독자 연구개발 △세계 일류기술 도입 등 방향성을 정하고, 외국기술을 도입할 경우 자본 도입을 허용하거나 반도체 제조용 시설재 허가요건 완화·관세 면제 등도 허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산 전자교환기 도입하자

“전화가 현대사회의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197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전화적체는 심각했다. 집 전화설치는 ‘하늘의 별따기’였으며, 전화를 빌려주는 ‘전화임대업’까지 성행했다. 공중전화 이용을 위해서는 길게 줄을 서야했고, 시외전화는 전화국까지 가서 신청한 다음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다가 초시계를 보며 써야 했다.

전화 수요 해결을 위한 전자식 교환기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는 시기도 이때부터다.

1976년 2월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전자교환기 도입 타당성 검토’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맡기기로 결정됐다.

당시 KIST시스템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정상현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3월부터 미국과 일본, 독일의 교환기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을 검토했다. 4월 17일 안내서를 AT&T, ITT, GTE, NEC, 지멘스, 후지쯔 등 업체에 보냈고, 최종 검토결과를 7월초 정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전자교환기 도입을 위한 일사분란한 움직임은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정부는 체신부 장관(이경식 전 경제부총리)을 위원장으로 한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TDTF)를 구성하고 전자교환기 도입을 결정, 12월 아날로그 전자교환기 국산화를 비롯한 디지털전자교환기술 국내 개발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기술 개발을 위한 전담 조직인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설립된 것도 바로 1976년이다.

1966년 원천기술 연구개발과 기초, 응용과학 연구 추진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됐다. [사진=NIA]
1966년 원천기술 연구개발과 기초, 응용과학 연구 추진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됐다. [사진=NIA]

■국산교환기 1호 탄생

1979년 10·26사태 이후 어수선한 국내 정세 속에서 전자교환기 개발 의지가 뒷전으로 밀리나 싶었지만 1981년 8월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 계획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체신부는 전자교환기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아래 ‘국산전자교환기개발 기본계획’을 구체화했다. 이는 전자교환기 불모지였던 한국이 통신강국으로 가도록 하는 거대한 설계도와 같았다.

체신부는 △교환기개발 사업은 국가전략사업으로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추진하며 △국가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구심점이 돼 생산업체와 공동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개발기간 단축과 개발성과의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 2단계로 나눠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해당 사업은 삼성반도체, 금성반도체, 대우통신, 동양전자통신 등 산업체가 참가한 협업시스템을 구성하고, 전자교환기 개발에만 240억원을 투입하는 등 단군이래 최대 규모 연구개발사업이었다.

그러나 전자교환기 국산화에 대해 우려와 비난이 일었다.

외국업체들은 대한민국의 국산화가 불가능하다고 공공연히 떠들었고, 무모한 국책사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느니 한강 다리 하나를 더 건설하는 게 좋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동연구 개발팀의 의지는 결연했다.

후일 “전자교환기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는 내용의 ‘TDX 혈서’가 알려지면서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1983년 드디어 정보통신망 발전사에 한 획을 긋는 이슈가 공개됐다. 그해 12월 경기도 용인군 송전우체국에서 500회선 규모의 전자교환기를 대상으로 시험 운용에 들어간 것이다. 국산교환기 1호였다. 전자교환기 명칭은 TDX(Time Division Exchange)로 정했고 이후 전자교환기의 대표적 이름으로 ‘TDX’가 사용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NIA 관계자는 “전자교환기 개발은 대한민국 통신혁명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며 “기술 빈국으로 외국산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이 전자교환기 국산화에 나선 것은 정보통신강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전자교환기 국산화는 통신혁명의 거대한 신호탄 역할을 했다. 전자산업 발전과 상호 시너지를 내면서 이후 CDMA 개발, 초고속정보통신, 이동통신강국이 되게 한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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