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대에 미친 한국을 꿈꾸며
[정보통신신문=차종환기자]
오랜만에 한 지상파 다큐멘터리가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KBS가 2부작 시리즈로 제작한 '공대에 미친 중국/의대에 미친 한국'이다.
이 다큐는 공대로 인재가 몰리는 중국과 의대로 인재가 쏠리는 한국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해 비춰주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과 같이 첨단 산업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은 것이 기정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올 초 미국 엔비디아 주가 폭락을 야기시켰던 중국의 딥시크(DeepSeek)를 비롯해 이미 글로벌 선도그룹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중국 로봇 기업들이 눈길을 끌었다. 나 참, 사람처럼 복싱을 하는 로봇이라니!
커뮤니티의 댓글이 재밌다. 중국의 '공대굴기'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는 반응이다. 중국산 전자제품이라고 하면 으레 조잡함, 불량품 정도의 이미지로 그리며 한국산을 은연 중에 우위에 두는 정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중국이 국가적 이공계 육성 정책을 발판삼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부 좀 한다 하는 학생들은 모두 의대를 바라본다. 어느 고3 수험생이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하는데, 학교만 다를 뿐 첫째도 의대, 둘째도 의대, 셋째도 의대에 원서를 쓰고 싶다는 말에 착잡함이 밀려온다.
훌륭한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겠다는 맘이라면 그 얼마나 훌륭한 생각인가! 내친김에 세계적인 의료 강국, 생명공학을 선도하는 것도 노려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의 맘은 딴 곳에 있다. 의사가 되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예쁜 아내와 결혼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롯데타워가 보이는 곳에 살 수 있단다. 실로, 충격과 공포다. 누가 이 학생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영상에서도 문제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바이지만, 근본 원인은 정책의 부재에 있다.
80, 90년대 대한민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은 서울대 물리학과, 전자공학과를 간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살 길은 오로지 기술 개발이라며 정부가 이공계 육성에 사활을 걸었던 시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공계를 가장 등한시하는 지금 우리나라는 그때의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를 먹고 살고 있다. 의대에 미친 한국이, 30년 후 우리는 의료 기술로 먹고 산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사실, 작금의 사태는 어제오늘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먹고사는 필자가 산증인이 아닐까 싶다. 벌써 대학 입학 때가 30년이 다 돼 가지만, 나름 적성과 성적에 맞춰 입시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며 들어간 신입생 시절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대학의 낭만을 노래하며 어깨동무하던 동기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다큐에서도 나왔듯, 그들 역시 '반수생'을 자처했고 목표는 의대였다는 후문이다. 정말 의대에 합격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남은 자들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공돌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공대 이탈율은 매년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 공대 기피 현상은 30여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나라는 사람이라는 자원 밖에 없다. 이제 2달 남짓된 새 정부가 정책의 기치로 내건 것이 세계 3위 인공지능 강국이다. 다 좋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왜 우리의 우수한 이공계 자원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어야 하는지 들여다 봐야할 일이다. 공대 출신이 무슨 인생의 패배자인 마냥, '공대는 안 된다. 가서 뭐 먹고 살려고 그러냐'라는 기가 차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교육계가, 우리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