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등을 향한 힘찬 발걸음
[정보통신신문=차종환기자]
'1등만 기억하는 매정한 세상'이 입에 붙는 말이지만 3등만 해도 세상이 박수를 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미 경쟁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AI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그 다음 가는 3등짜리 AI 국가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GPU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현재의 AI 기술은 GPU 기반의 병렬 연산이 핵심이기에 이러한 연산에 특화된 GPU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하지만 쓸만한 GPU를 생산하는 기업이 현재로선 엔비디아가 독보적이다. 유수의 빅테크들이 엔비디아의 GPU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이유다.
그런데 최근 엔비디아가 우리나라에 GPU 26만장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간 우리나라가 확보하고 있던 GPU 숫자에 비하면 '퀀텀 점프' 수준의 성과다.
엔비디아의 이러한 행보엔 다 이유가 있다. GPU의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는 HBM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우리나라뿐이기 때문이다.
AMD, 브로드컴 등 엔비디아의 경쟁사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이들 역시 HBM을 필요로 한다. 엔비디아로선 이들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HBM 공급사인 SK하이닉스, 삼성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서울 삼성동에서 괜히 치맥 회동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면, 한국의 AI 3등은 전망이 더욱 밝다.
AI를 돌리기 위해 건설되는 데이터센터가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비한다. 대대적인 전력 인프라의 고도화가 동반돼야 하는데 여기에서의 핵심 장비인 변압기마저 제대로 만드는 기업이 우리나라 밖에 없다.
전력 생산 측면에 있어서도 AI 수요를 감당하려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힘을 받는다. 놀랍게도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기업 역시 전세계적으로 한국 기업 외에 대안이 없다.
아직 모멘텀이 옮겨오진 않았지만, 마지막 단추는 통신이 채우지 않을까 싶다.
대륙간 데이터통신을 가능케 하는 해저케이블을 깔 수 있는 기업이 다섯 손가락에 꼽는데 우리나라에 둘이나 있다. 더불어 국가 단위 테라급 통신망에 가정용 광네트워크가 전국에 깔려있고 5G이동통신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나라다. 가히 1등 같은 3등 AI 국가다!
AI는 이제 의심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범국가적 투자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의 정보통신강국을 만든 2000년대 초고속인터넷 붐에 버금가는 통신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