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 혁신에 달린 AI 전환 성패
[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최근 국내 대표 기업들이 800조원 이상의 대내 투자 계획을 선언했다.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팽배한 와중에도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국내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인공지능(AI) 전환으로 국내·외 경제·산업은 지금 분명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기존 산업의 구조가 재편되고, 기술의 주도권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 하나를 개발하는 문제를 넘어, 국가 차원의 AI 인프라, 데이터 활용 체계, 반도체·클라우드 역량이 모두 맞물려 새로운 경쟁 구도가 펼쳐지는 중이다.
앞으로 산업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명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AI 주도권을 어느 나라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미래 경제력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들의 대대적인 국내 투자는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AI 인프라 확충,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첨단 모빌리티 육성, 초거대 AI 모델 개발,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미래 기반을 국내에서 강화하겠다는 방향성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즉 이번에 기업들이 대규모 국내 투자를 선언한 것은 장차 우리나라가 미래 먹거리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 의지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규제 개선과 정책 지원이라는 전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효율적으로 활용돼 성과로 이어져야 하는바, 미국·중국 등 경제 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규모에서 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낡은 규제를 손질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오래전부터 “규제를 완화하겠다”, “신산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걷어내겠다”고 공언해 왔음에도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계속 제기된다.
규제 개혁 약속은 이어지는데, 불합리한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기술의 혁신과 시장의 변화가 날이 갈수록 속도를 더해 나가지만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은 더딘 데 따른 탓이다.
AI·디지털 전환 속도 경쟁의 시대에는 규제의 정비 속도 또한 국가 경쟁력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법령 간 충돌, 정부 관계부처별 제각각인 기준, 테스트베드를 가동하기 위한 복잡한 절차 등은 신산업 창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사전에 모든 위험을 통제하려는 현재의 경직된 규제 구조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출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결국 기업의 사업 결정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신산업·신기술 분야에는 초기의 위험을 100% 제거하는 방향보다는, 위험을 관리하면서 혁신을 허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체계 확대, 규제샌드박스의 권한 강화와 범위 확장, 사전 규제에서 사후 평가 중심으로의 전환 등 기존 틀을 과감히 깨는 도전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규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공감하는 데만 그쳐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규제를 언제 없앨 것인지 구체적 일정과 실행 책임이 명확한 로드맵을 기업에 제시해 정책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있다.
AI 대전환을 향한 민간의 노력이 정책 당국의 규제 개선 노력과 합쳐져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정부와 국회가 미래 먹거리 선점과 AI 3대 강국 달성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