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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마밀라피나타파이를 경계하라
[기자수첩] 마밀라피나타파이를 경계하라
  • 서유덕 기자
  • 승인 2023.08.1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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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서로에게 꼭 필요함에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이 스스로 해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 말로 풀어 설명하면 길고 복잡하지만, 누구나 경험에 비춰 익히 이해할 수 있는 그 눈빛을 칠레 남부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야간(Yaghan)족 원주민은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라고 부른다.

이는 언젠가는 처리해야만 하는 일의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어 종국에는 구성원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에서는 핵심 의사결정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아 손해로 이어지고, 회의가 길어져 임직원 개개인의 업무 효율이 저하되기도 한다.

마밀라피나타파이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 조직은 공직사회다. 공직사회 조직문화에 횡행하는 눈치 보기와 남 탓은 국가와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수동적인 공직자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익숙할 만큼, 공직자가 수동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건 다반사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남겨두지 않으려 규정과 방침, 형식과 절차 등 각종 이유를 들어가며 업무를 회피하기 일쑤다. 대규모 관료제 조직에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추진되는 공공 업무는 그 특성상 개인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명감과 책임감, 봉사 정신은 사라지고 개인의 안녕만 우선하는 이기주의만 남아 미묘한 눈빛만 주고받고 있는 공직사회의 그릇된 조직문화는 최근 잇따른 치명적 이슈로 그 실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지난달 15일 14명의 인명을 앗아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관할 도로관리청인 충북도청과 그 예하 청주시청, 흥덕구청 등 지자체의 부실한 대처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들 기관은 홍수 경보 발령에도 현장 교통통제 업무를 떠넘기는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사고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여 주민들로부터 날 선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00억원 들여 무너뜨린 국격’이라는 악평이 자자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원인으로는 대회 준비에 구심점 역할을 할 지휘부의 부재가 꼽힌다. 관계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현장의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직위원회 운영도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대회를 1년여 앞둔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폭염, 폭우, 위생, 방역 등 대책을 종합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현장 안팎에서는 이미 우려와 건의가 다수 제기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직위원회는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공직사회의 그릇된 조직문화는 재난 안전과 국제 행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시장·기술 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세계 무대에서, 기업경쟁력을 넘어 국가경쟁력을 드높이려는 민간의 노력이 공공 행정의 안일한 대응에 발목을 잡히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행정력은 삼류, 기업경쟁력은 이류”라고 발언한 바 있다. 지난해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이 3곳 포함되는 등 국내 기업경쟁력은 일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반면 행정은 되레 퇴보하는 모양새다.

국가 행정이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어리석음은 우려일 뿐이어야 한다. 세계 경제 구조와 기술 수준, 사회적 핵심 가치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공직사회는 실질적인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분골쇄신해야 한다. 그 조직문화 혁신마저도 요식행위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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