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할머니가 내 이름을‘보리’라고 지어 주셨지. 난 세상을 정말 열심히 배웠어. 냄새 맡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난 냄새도 잘 맡아. 냄새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할머니와 할 머니 손자, 그리고 어부인 주인님한테서 나는 냄새가 다 달라. 여름날 햇볕이나 흙, 바람, 숲,물 냄새도 다르지. 그리고 난 함부 로 짖지 않아. 낯선 사람이 온다고 덮어놓고 짖는 놈은 개 축에도 못 끼는 놈들이지. 대신 나는 달을 보고 잘 짖어. 우우우우… … 컹컹컹……. <본문 중에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붙인 김훈의 소설 '개'는 개의 눈으로 인간의 삶을 비춰낸 우화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진돗개 수놈 보리의 눈에 비친 인간세상의 부조리들, 덧없는 욕망과 집착, 의미 없이 떠도는 말들, 그로 인한 인간의 약함과 슬픔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날 것의 발바닥과 몸뚱이 하나로 척박한 세상 속을 뒹굴며 주어진 생을 받아들이고 또 힘차게 살아내는 진돗개 보리의 세상살이를 통해, 작가는 생명을 지닌 것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살아간다는 일의 지난함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빛나는 생의 의미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더불어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은 진돗개 수놈 보리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의 덧없는 욕망과 집착, 의미 없이 떠도는 말들, 그리하여 고통받는 인간의 나약함과 슬픔을 여과없이 짚어낸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개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에 새카만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 굳은살은 땅을 딛고 달릴 만큼 단단했고 충격을 버틸 만큼 폭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정보통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