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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홀인원의 기쁨
<독자투고> 홀인원의 기쁨
  • 한국정보통신
  • 승인 2006.01.16 09:06
  • 호수 1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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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지역인 이곳 북가주의 겨울은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이다.
크리스마스날과 설날에도 큰비가 하루종일 내렸다. 올해는 유난히 폭우라며 물난리에 대비하라는 경고로 뉴스마다 야단들이다. 이주일 동안 지루하게 내리던 폭우가 슬며시 꼬리를 감추며, 무겁게 짓누르던 먹구름이 서서히 비껴 가는 사이로 햇살이 삐죽 내민다.
오랜만에 나오는 햇살이라서 눈이 부시다.
우리 부부는 골프가방을 챙겨들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체리아일랜드(Cherry Island golf course)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을 하고싶어하던 많은 골퍼들이 클럽하우스에 북적거렸다. 우리는 아침 일찍 예약해 놓은 터라 12시 20분 기분 좋게 라운딩을 시작했다.
꽤 큰 폭우가 며칠을 퍼 붇고 나니, 야무지게 생긴, 우람한 오크나무의 굵은 줄기들이 부러져있고, 몇 그루는 온통 뿌리째 뽑혀 넘어져 있었다. 코스 사이로 흐르는 실개천도 많은 상처를 입고 애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유난히 아름다운 연못이 많은 이곳 골프장의 연못마다 흙탕물이다. 오리들이랑 거위들도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들이 반가워 꽥꽥거리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잔디밭은 그냥 풀밭처럼 질퍽거리고 그린 상태도 좋지는 않았지만, 굶주린 골퍼들이라 개의치 않고 즐기며, 상쾌할 때에 나오는 높은 옥타브의 음성들이 들렸다. 무거웠던 어깨가 다소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상쾌했다.
라운딩 거의 끝나는 17번 홀은 파 3의 113야드의 거리이다. 그린 바로 앞에는 2개의 벙커가 진을 치고있고 제법 넓은 연못을 넘겨야하는 까다로운 홀이다. 나는 부담감 없이 7번 아이언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용히 스윙을 했다 (오후 4시20분 경) 순간, 공 맞는 소리가 가볍게 들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얀 공이 달려나갔다, 예감이 좋은 것 같아서 "버디찬스"하며 티 박스를 내려오니, 남편이 나도 "잘 맞았어" 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린 가까이 가서보니, 그린 위에는 하얀 공이 한 개뿐이다.
"어∼내공은 어디로 갔나..." 하며 남편은 의아해 하며 그린 주위를 살피면서 공을 찾는다.
나도 함께 그린 주위를 둘러봐도 공은 안 보였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 나부터 홀 아웃을 해야 한다며 남편은 시무룩해졌다. 나는 서둘러 그린 위에 있는 공을 조심스럽게 퍼팅을 하여 깃대에 붙여놓고 파란색 깃발을 빼려는 순간, 홀 속에 하얀 공이 한 개 들어있었다.
"어머∼당신공이 홀 컵 속에 들어있어요. 홀인원이야∼"하며 소리를 지르니. 공을 못 찾고 기분이 언짢던 남편이 갑자기 상기되며 "그래?" 하며 달려와서 내 손바닥을 탁! 치고 기뻐하며 공을 꺼내들더니, "이거 내 것이 아니고 당신 공이잖아..."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홀인원을 한 거였다. 우리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마주치고 자축하며 흥분되었다.
근처 홀에서 홀 아웃을 하고 나오던 서양사람들이 나의 홀인원 소리를 듣고 모두 달려와서 손바닥을 마주치는 의식(ceremony)을 하며,"Congratulation(축하)!" 하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 한잔 내야 한다며 함께 기뻐해 줬다.
18홀을 끝내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아∼, 엄마 지금 막 홀인원 했다."
"와우∼엄마∼축하해요, 멋져요." 하며 고조된 음성으로 기뻐한다.
남편이 코스의 거리를 확인한다며 클럽하우스에 다녀오더니, 진행자가 나의 홀인원 소식을 들고 축하 해주며 내 이름을 기록에 올리고, 이곳 새크라멘토 신문(Sacramento Bee)의 홀인원 명단에 내 이름이 나온다고 한다.
이곳 타국에서 무명의 동양인, 내 이름이 신문에 올려진다니, 더 한층 기분이 좋았다. 일생에 한번 할까, 말까 한다는 홀인원인데... 내가 골프 시작한지 26년만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 달 전, 남편은 30년 넘게 해온 전문직을 막 은퇴했다.
우리의 노년 삶을 시작하는 첫해, 병술년 세모에 이런 기분 좋은 일로 시작되니 좋은 징조인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올해는 내가 소망하는, 튼튼하고 예쁜 손주와 우리 딸이 의지하고 동반할 수 있는 든든한 사윗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마음이 설레 인다. 인생은 분명 생물학적인 연령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다.
이렇게 가까이 노년의 길이 있다는 생각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동안 쌓아온 많은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들을 모아서 이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을 설계하며 1/3 남은, 나머지 나의 삶을 힘차게 행진할 것이다.
정녕∼아름답게...


2006년 1월 4일 우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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