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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 가시 ‘최저가낙찰제’ 해법 없나
손톱 밑 가시 ‘최저가낙찰제’ 해법 없나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3.02.04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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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100억 이상으로 확대…최근 다양한 변수 등장

업계선 폐지 주장…최고가치 입찰 대안 부상
국회 법령 개정작업-국토부 제도개선안 주목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에 대한 정부 방침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가 당초 내년부터 공공공사에 대한 최저가낙찰제 적용범위를 30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최근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제도의 골격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개연성이 커지고 있는 것.

무엇보다 최저가낙찰제 확대에 대한 관련업계의 저항이 거세다는 점에 시선이 모아진다.
다수의 시공업체들은 가격경쟁에 따른 시공품질 저하, 부적격업체 낙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최저가낙찰제의 완전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공공입찰제도 개선에 뜻을 같이 하는 여야 의원들이 관계법령 개정작업을 적극 추진하며, 업계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국토해양부에서 최저가낙찰제 폐지에 관한 내용을 담은 공공발주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 후 국가계약제도 시행에 관한 관련부처 간 정책 조율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정부 “운찰제 바로잡아야” = 정부는 당초 최저가낙찰제 확대시점을 2012년으로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전기공사업체와 중소·중견건설사 등 시공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시행시기를 2년간 유예했다.

정부의 최저가낙찰제 확대 방침에는 현행 공공입찰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

무엇보다 일정수준의 낙찰률을 보장하는 적격심사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적격심사제의 경우 기술능력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해 예정가격을 잘 예측한 업체가 낙찰자로 결정되는 ‘운찰제(運札制)’로 변질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현재 300억 원 미만의 공공공사에 적격심사제를 적용함에 따라 기술능력에 차이가 없을 경우 예정가격의 입찰 하한선인 80%에 가장 가까운 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자로 결정된다. 입찰결과가 운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는 셈이다.

아울러 페이퍼 컴퍼니를 양산하고 경쟁력 없는 업체라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현행 입찰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예산절감 차원에서도 최저가낙찰제는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최저가낙찰제 확대는 재정 집행규모를 줄여 국가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하는 유용한 방편이 된다.

정부는 최저가입찰제를 100억 원 이상 공공공사로 확대할 경우 낙찰률이 하락해 매년 5000억 원 안팎의 공사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업계 시각은 ‘천양지차’ = 하지만 최저가낙찰제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업계에서는 최저가낙찰제가 업체 간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저가투찰에 따른 부실시공을 초래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아울러 공사비 절감을 위한 인력감축 등으로 중소 시공업체의 대규모 도산 및 실업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는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무리한 저가 낙찰에 따라 실행원가가 낮아질 경우, 그 손실이 하도급업체나 장비·자재업체 등에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 밖에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편법·탈법행위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시설물 안전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최저가낙찰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 최저가낙찰제 효과 ‘글쎄’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이 최근 발간한 ‘최저가낙찰제도의 개선방향 연구’ 보고서는 최저가낙찰제에 대한 업계의 인식과 체감효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7∼8월 관련업계와 발주기관 16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6.2%가 최저가낙찰제 확대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발주자 측의 반대도 87.1%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저가낙찰제의 운영실태 평가에 대한 내용도 관심을 끈다.
건산연은 당초 최저가낙찰제의 도입 목적인 시장 지향적 경쟁 원리에 적합한 낙찰자 선정과 기업 경쟁력 강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86%가 당초 최저가낙찰제의 도입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세부적으로 건설업체와 발주기관, 용역업체(감리·설계·엔지니어링) 모두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발주기관에서도 응답자의 68%가 최저가낙찰제의 도입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응답했다.

최저가낙찰제가 성공하려면 해당 공사에서 원가 경쟁력이 있는 업체의 낙찰 확률이 높아야 하는데, 현행 최저가낙찰제의 저가심의 방식에서는 입찰자의 원가 경쟁력에 대한 질적인 심사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부실공사나 안전재해의 증가 여부에 대해 건설업체, 발주기관, 용역업체 모두 80% 가량의 응답자가 부실공사나 안전재해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발주기관에서도 응답자의 74%가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부실공사나 안전재해가 증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현행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낙찰된 공사의 수익성(실행예산 편성시점 기준)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45.6%가 ‘적자 우려’를, 44.9%의 응답자가 ‘적자 심각’이라고 응답했다.

□ 국회서도 반대기류 감지 = 국회에서도 최저가낙찰제에 반대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특히 일부의원들이 최저가낙찰제 폐지를 골자로 관계법령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공공입찰제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4일 계약이행능력과 기술력이 필요한 공사입찰에 최고가치 낙찰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 발의에는 김태원·배기운·정성호·백군기·박인숙·문정림·박완주·인재근·김세연 의원 등 여야의원 9명이 동참했다.

이 의원은 “현행 최저가낙찰제는 건설업체 간 가격을 낮추려는 과당경쟁을 유발해 건설공사 이행과정에서 무리한 덤핑입찰과 공기단축, 노무비 절감, 부실시공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의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최고가치낙찰제를 도입해 입찰금액 외에 품질, 기술력, 유지관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낙찰자를 선정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 등 11명의 의원은 지난해 11월 최저가낙찰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종합평가낙찰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300억 원 이상 공공건설공사 중 기술력을 요하는 공사에는 종합평가낙찰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김희국 의원은 “최저가낙찰제는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됐고, 부실시공에 따른 하자보수·유지관리비용의 증가로 이어져 예산낭비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사를 적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가격을 주고 발주해야 하는 게 법 이전에 상식이고 정부의 도덕적 의무”라며 “국가가 민간 기업들의 살과 뼈를 갉아먹는 나쁜 제도인 최저가낙찰제의 문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건설산업진흥계획 촉각 = 14일 국토부가 발표한 '제4차 건설산업진흥기본계획'도 공공입찰제도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는 가격경쟁 위주의 최저가낙찰제와 운찰제로 전락한 적격심사제도로는 우수업체 선별과 공사품질 확보가 어렵다며 발주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발주방식 및 심사기준에 대한 발주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구체적으로 300억 원 이상 공사에 대한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발주자가 해당공사에 맞는 최적 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종합평가낙찰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발주기관이 공사특성을 고려해 종합평가, 최저가낙찰제, 기술제안입찰 등 발주방식을 선택하고 별도 심사기준을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에 덧붙여 국토부는 최저가낙찰제도와 적격심사제도의 적정업체 선별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우선 최저가낙찰제도에 대해서는 전략적 투찰을 방지하고 실질적인 저가투찰 선별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저가심의제도를 내실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적격심사제도의 운찰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사수행능력 평가의 변별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직접시공, 배치예정기술자 경력 등 실질적인 공사수행능력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최고가치낙찰제 도입 어떻게 = 공공입찰제도의 개선에 대한 국회 및 국토부, 업계의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시공업체에서는 향후 최저가낙찰제를 폐지 혹은 축소하고, 가격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최고가치낙찰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건산연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 운용 방향에 대해 관련업체와 발주기관에서는 △최저가낙찰제 폐지 34% △ 300억 원 이상에서 최저가낙찰제 적용(현행 유지) 27% △발주자 재량권 부여 21.4% 등으로 응답했다.

최고가치낙찰제 도입 방법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8.8%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개선해 최고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현행 제도 가운데 최고가치형 입찰제도로서 가장 적합한 방식에 대해 응답자의 22.4%가 ‘실시설계기술제안입찰’을 선택했으며, 21.2%는 ‘적격심사낙찰제’를 꼽았다.

□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 절실 = 현재로서는 내년부터 최저가낙찰제를 확대 적용한다는 정부 방침에 변동이 없다.

이에 새 정부가 최저가낙찰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손톱 밑 가시’를 뽑아달라고 아우성인데, 박근혜 정부가 최저가낙찰제를 얼마나 큰 가시로 여길지는 지켜볼 일이다.

제 때 가시를 뽑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고 깊어진 상처는 곪기 마련이다. 곪은 상처는 언젠가 터진다. 새 정부가 이런 상식과 순리를 도외시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지 업계에서는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걱정이 능사가 아니라, 업계 차원의 냉철한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최저가낙찰제 확대를 무조건 반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현행 공공입찰제도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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