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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죽이는 칼 아닌 ‘살리는 칼’이 필요하다
기업 죽이는 칼 아닌 ‘살리는 칼’이 필요하다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3.11.19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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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부정당업자 제재 실효성 어떻게 높일까

제재시기 조정 등 운영의 묘 살려야
현행 법령 미비점 합리적 개선 필요
건전한 시장질서 확립이 궁극적 해법

○…소규모 정보통신공사업체인 □□사는 몇 해 전 공사업 등록기준에 관한 사항을 정해진 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아 1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회사 대표자가 집안에 우환이 생겨 회사 일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했고, 담당 직원도 여러 까지 일을 혼자서 도맡아 처리하느라 등록기준 신고업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이 회사가 올해도 이 같은 사유로 등록기준 신고를 제 기간 내에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처분을 내렸을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영업정지가 아닌 과징금 처분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정보통신공사업법령이 개정돼 영업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 징수에 관한 규정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정보통신공사업법 개정에 이어, 같은 해 7월 하위법령인 정보통신공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등록기준 신고를 30일 이내에 하지 않은 경우 영업정지 1개월 또는 1000만 원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처분을 받고 해당처분 종료일까지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영업정지 3개월 또는 과징금 30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정보통신기술자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을 때에는 영업정지 15일 또는 과징금 5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각각의 위반행위에 대해 오로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했던 종전의 규정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 같은 법령 개정작업은 부정당업자 또는 행정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업체에 대한 제재의 필요성을 견지하면서도, 법의 제재규정이 원활한 기업활동을 옥죄는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업 친화적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다수의 기업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특히 일선 현장의 중소 시공업체 등은 여러 가지 사정상 본의 아니게 부정당업자가 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에 대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최근 주요 기관에서 부정당업자에 대한 제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해 관심을 끈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거래질서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정당업자에 대한 제재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구체적 제재방식은 전후사정을 고려해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생각해 보면, ‘사람(기업)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중처벌 등 문제소지 많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현행 부정당업자제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부정당업자에 대한 제재는 불가피하지만, 계약질서 침해 정도의 경중(輕重)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고서는 각각의 행위에 대한 관련 법령상의 제재 외에 모든 발주처의 입찰참가 제한을 병과(竝科)한다면 위반 행위의 위법성과 비교해 과중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현행 부정당업자제재제도의 문제점을 6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부정당업자 제재대상의 행위 유형이 21가지나 될 정도로 다수이고, 그 중 일부는 해당
법령에 의한 제재 외에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이 함께 부과되고 있어 이중처벌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으면 대부분의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상 영업중단에 따른 업체의 존폐가 우려되므로 ‘이익 형량의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익 형량의 원칙’이란 충돌하거나 양립하는 두 사안의 이익을 비교해 이익이 더 큰 쪽으로 결정하는 원칙을 말한다.

국가계약법시행령 내 규정 ‘혼선’

아울러 보고서는 현행 부정당업자 제재대상 행위의 각 구성요건의 해석과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부정당업자 제재대상 행위가 사실상 입찰참여 행위 자체를 옥죄는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담합 등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요청이 필요한가에 관해 국가계약법시행령 내 규정이 일치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은 징벌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아 건설업체는 언제까지나 제재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입찰 준비를 해야 하는 모순이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부정당행위를 자진 신고하는 경우 제재를 감면해 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실제로는 자진 신고한 자의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처분이 내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특별법 우선의 원칙’과 앞의 언행을 스스로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반언(estoppel) 원칙’ 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과징금 부과대상 정비해야

보고서는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우선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대체한 과징금 부과대상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계약법 시행령상의 일부 위반행위 유형을 제외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못한 것이므로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보고서는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한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부정당업자 제재를 ‘징벌적 운영’에서 ‘유도적 운영’으로 바꾸는 등 국가계약법 시행령상의 구성요건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사유가 발생한 후 일정 기간 내 제재 처분이 없는 경우 처분을 면제토록 함으로써 건설업체의 안정적인 영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시효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담합행위 등의 위반에 대한 제재를 위한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요청의 필요 여부는 필요한 것으로 해석하되, 법적 명확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국가계약법시행령에 이를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자진신고를 한 자에 대해서는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예외를 인정하도록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명시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경련도 합리적 제재 촉구

전경련도 최근 ‘건설규제·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간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제재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경련은 우선 보고서에서 부정당사업자 제재의 합리화를 촉구했다.
현재 공정거래법 위반, 서류미비 등으로 처벌을 받은 건설사는 공공입찰에 최대 2년 간 참여할 수 없는데, 이는 중복제재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공입찰 참여금지에 따른 경영난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다른 법률에서 제재를 받은 경우 부정당사업자 제재에서 제외하고 서류 미제출 등 경미한 사안은 입찰제한이 아닌 과태료로 제재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부정당사업자 제재시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부정당사업자 제재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곧바로 일정기간 공공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법원의 확정판결이 없이 입찰참여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어긋나며, 관련기업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은 후 입찰자격을 제한하도록 제재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경쟁 원칙 확립” 선행돼야

하지만 부정당업자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면서도 유연하고 합리적인 제재방식을 마련하는  데는 적잖은 진통과 혼선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불법·불공정행위의 유형이 워낙 다양하고, 정부 또는 행정처분 기관에서 부정당업자에 대한 제재수위가 적절한 지 판단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칫 기업의 입장에 치우쳐 부정당업자에 대한 제제를 느슨히 할 경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은 정부 또는 행정처분 기관에 큰 짐이 된다.

결국 부정당업자에 대한 합리적 제제에 관한 문제는 단순한 제도개선의 문제가 아닌 건전한 시장생태계 조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부정당업자의 시장진입을 막고, 엄격한 공정경쟁의 원칙에 따라 낙찰자를 선정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하고 단순한 일반론이서도, 결국은 가장 빠른 해법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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