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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입찰 불공정 관행에 중소기업 ‘속앓이’
공공입찰 불공정 관행에 중소기업 ‘속앓이’
  • 차종환 기자
  • 승인 2017.01.12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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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알박기’…외산업체 배불리기
요구대로 수행해도 퇴짜놓기 일쑤
협회 중심 전문 법률그룹 ‘절실’
▲ 공공기관의 공정하지 못한 입찰 관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A사에 보관된 갈 곳 없는 백본스위치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지능형교통정보시스템(ITS)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정보통신공사업체 A사는 공공기관인 B기관을 상대로 2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당초 B기관은 업무망 통신부하에 대비해 노후화된 백본스위치를 교체하는 사업을 공고했다. A사는 본 건과 관련 최종 낙찰자로 선정돼 해당 장비를 납품, 설치하게 됐다.

그러나 B기관이 제시한 요건에 맞춰 장비를 확보해 기한 내 계약건을 완수하려 했던 A사는 B기관의 일방적인 공고 해석과 납득되지 않는 조건 제시에 가로막혀 납품을 하려고 해도 수요처가 받아주지 않는 기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결국 B기관은 사업이행 지연을 이유로 A사에 계약해지를 통보, A사는 그에 따른 선급금 반환 및 지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업계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ICT장비(컴퓨팅, 네트워크, 방송장비) 납품과 관련해 공공시장에 만연한, 이른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불합리한 처사는 A사와 같은 피해를 보는 업체를 또 양산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 겉과 속이 다른 ‘스펙 알박기’ = 입찰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공정성이다. 어느 특정업체에만 유리한 사항이 들어가게 되면 입찰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사업공고는 ‘동등 또는 동등 이상의 제품’, ‘호환 가능 제품’ 등으로 공정성을 기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시스템 세부규격에는 특정 업체만이 소유한 기술규격을 기재하는 식의 ‘꼼수’가 빈번하다.

ICT장비는 타 제조사 간 호환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업계에선 상식으로 통한다. 납품업체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기존 구축된 제품의 제조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제품까지 완전히 새로운 제조사로 바꾸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스템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고 예산이 더 추가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요처에서 난색을 표한다.

이러한 경우를 업계에선 소위 ‘스펙(spec) 알박기’라 칭한다. 궁극적으로 특정 제품만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그에 반하는 사업자나 제품은 원천차단 하는 것이다.

□ 수요처와 특정업체간 끊임없는 의혹 = 그렇다면 왜 수요처에서는 기존에 쓰던 제품만 고집할까. A사의 경우를 보면 의문점은 더 짙어진다.

A사는 계약초기 자사가 제시한 장비가 아닌, 아예 100% B기관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하기로 하고 해당 제조사의 해외지사를 통해 물품을 확보했다. 수요처에서 강조한 호환성마저 전혀 문제 삼을 필요가 없도록 한 조치였다.

A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품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B기관 측이 본 납품 스위치가 정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에 A사는 해당 제품이 정품임을 증명하는 각종 보증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B기관은 이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업계에선 제품을 떠나서 A사가 애초에 기관이 원하는 업체가 아니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고 못을 박는다. 심지어 모 업체는 모 기관으로부터 입찰에 탈락한 업체의 장비를 쓰라는 요구까지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결론적으로 수요기관과 기존 제조사, 대리점, 유지보수업체 등에 이르는 특정업체간 이미 단단한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혈세’가 샌다 = 공공기관에 ICT장비를 납품한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사업 예산이 과도하게 집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가상승률, 유지보수 비용 등을 포함해 아무리 보수적으로 비용을 잡아도 기관이 제시한 사업 예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즉, 싼 제품에 일부러 비싼 값을 치른다는 뜻이다. 예산절감을 위해 기존 제품을 재활용, 호환되는 제품을 써야한다는 기관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ICT장비가 국산 제품이면 내수진작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자위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분야 ICT장비는 외산의 점유율이 90%에 이른다. 이는 곧 소중한 국민의 세금이 외산 업체 배불리기에 쓰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업계는 이미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기관이 외산 업체의 대리점 역할을 한다는 냉소로 가득한지 오래다.

□ 중소기업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아무리 사소한 소송이라도 회사의 존폐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중소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치부하고 애초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중소기업의 애환이 더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 힘이 빠지는 것은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점이다.

A사는 업계에선 상식으로 통하는 사항임에도 B기관이 제시한 기술규격이 여타 어느 제조사의 제품과도 호환되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당연히 경쟁사는 동등 규격의 제품이라도 호환이 되지 않음을 알려왔지만 A사를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해야할 의무는 없다. 심지어 ICT장비 관련 협단체 조차 주요 수요처인 공공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해명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A사는 분통을 터트렸다는 후문이다.

이와 같은 일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전문적인 변호를 받을 리도 만무하다. 영세한 기업 환경에서 대형 로펌을 이용하기도 힘들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법률 전문가를 찾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이러한 일에 대비해 관련 협회 등을 중심으로 전문 법률그룹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사업을 수행하다보면 언제든 다국적·대기업의 횡포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필요주체들이 스스로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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