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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식량도 목동도 없이 소몰이 하는 정부
[창가에서] 식량도 목동도 없이 소몰이 하는 정부
  • 이민규 기자
  • 승인 2017.08.21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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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통신요금 인하에 부쳐

지난 17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았다. 북핵문제와 살충제 계란 등 국정운영 곳곳에 지뢰밭이 널려 있지만, 아직까지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기반은 매우 견고하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필요충분조건은 정(政)·관(官)·민(民)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바른 정치와 효율적면서도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민간의 창의와 역동성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통신사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내달 15일부터 이동통신요금의 선택약정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서 통신요금 인하를 반강제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이 현 정부의 국정기조와 부합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이른 바 ‘J노믹스’의 근간은 ‘국민성장’이다. 그 핵심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구조를 가계와 국민이 중심이 되는 성장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정부 주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발전이 불러온 양극화와 저성장 구조를 허물고 더 튼튼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기르겠다는 뜻이다.

일견, 통신요금 인하정책은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성장’과 같은 색깔을 띠고 있다. 통신요금을 내려 가계의 부담을 덜고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며, 저소득층을 보호한다는 기본 취지가 그렇다.

일반 소비자입장에서는 절대 다수가 통신요금 인하에 찬성할 것이다. 다달이 부담해야할 금액은 다르겠지만, 당장 지출해야 할 돈이 줄어드는데 어느 누가 통신요금 인하에 반대할 것인가.

그러나 인위적이고 급격한 통신요금 인하가 정보통신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그 부작용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해 보자. 급격한 통신요금 인하는 통신사의 매출 및 수익감소로 이어진다.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팩트(facts)다.

해당 통신사는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네트워크 고도화 및 유지보수, 장비 교체, 신규 서비스 제공 등 사업전반의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이들 통신사와 거래하거나 간신히 거래의 물꼬를 튼 다수의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통신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클 경우 심각한 경영난에 부딪힐 수도 있다. 회사 문을 닫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지경에 이르면 투자 확대 → 소득증가 →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진다.  이처럼 정보통신산업 생태계가 활기를 잃게 되면 맥박이 고르지 않고 호흡도 거칠기 짝이 없는 중환자의 모습을 하게 된다.

정부의 정책기조인 ‘국민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J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따르면, ‘국민성장’은 ‘일자리 중심 성장’, ‘소득주도 성장’, ‘동반성장’ ‘혁신성장’과 궤를 함께 한다. ‘네 바퀴 성장전략’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정부가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동원해 요금인하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할 경우 이 같은 네 바퀴 성장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게 된다.

중소기업들이 매출부진으로 문을 닫으면 일자리는 줄고 소비의 원동력은 상실된다. 일자리 중심, 소득중심의 성장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동반성장’, ‘혁신성장’ 역시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착한 정책이 곧 만병통치약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 좋은 풀을 먹이겠다며 채찍을 휘둘러 소떼를 앞으로 몰기만 하면 되겠는가.

수백 마리 소를 거느리고 먼 길을 떠나려면, 충분한 식량과 유능한 목동이 필요한 법이다. 지도와 나침반도 필수다. 어느 하나라도 갖추지 못할 경우 여러 마리의 소를 잃을 수 있다.
‘통신요금 인하’는 수백 마리 소를 모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대 담론이다.

정부가 식량도 목동도 없이 길을 나서려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 성급함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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