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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사다리 없이 하늘에 오르려나
[창가에서] 사다리 없이 하늘에 오르려나
  • 이민규 기자
  • 승인 2022.04.17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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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논설위원.
이민규 논설위원.

러시아 사태가 촉발한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일선 기업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특히 전체 공사비 중 자재값의 비중이 큰 건설업 및 전문 시공분야 중소업체들의 상흔이 깊다. 자재값은 다락같이 올랐는데 발주처와 원도급자의 계약금액엔 변동이 없다보니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상당수 중소업체는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적자시공과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윤이 남지 않아도 계속 공사를 수주해야만 고정 인력과 장비운영에 필요한 당장의 경비를 충당하고 거래처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까닭이다.

원가를 낮춰 수익률을 높이려는 발주처나 원도급자(대기업)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원자재 값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게 어렵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는 중소 시공업체 입장에서 보면 적정공사비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최소한의 매출과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업은 정상적인 경영을 지속할 수 없는 게 경제의 기본원리다. 중소 시공업체 역시 이 같은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소업체의 적자시공은 발주처에게도 치명적인 독이 된다. 제값을 받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마무리한 사업은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안전관리에 필요한 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재해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도급업체가 일부 공사를 맡은 것이라도 전체 완성물의 시공품질이 떨어지면 발주처의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는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등의 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적정공사비 보장은 중소 시공업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발주처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질식 위기에 몰린 건설업 중소기업 관련단체는 원자재가격 폭동과 자재 수급 불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관계부처에 전달한 건의문에서 “공공공사와 민간공사 모두 자재가격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고 공사가 중단된 경우 공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정부 지침을 시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 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정부는 이들 단체의 절박한 목소리에 배어있는 깊은 한숨과 뜨거운 눈물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처와 원도급자가 가격을 무기로 중소 하도급업체를 옥죄는 관행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된다. 자재가격 인상분을 공사비에 100% 반영하거나 완전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단기간에 시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연간단가 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불합리한 갑을관계가 아닌 공정한 원칙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고서인 초사(楚辭)에 ‘석계이등천(釋階而登天)’이란 구절이 나온다. 사다리를 버리고 하늘에 오르려 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비유한 말이다. 제값을 주지 않으면서 고품질 시공을 바라는 것은 사다리 없이 하늘에 오르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애호가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수천만 원을 지불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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