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등 근원적 문제 해결 없이 사업주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하도급 등 근원적 문제 해결 없이 사업주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보통신신문=이민규기자] 

정부가 건설 현장의 산업재해와 사고 예방을 위한 강력한 대책 마련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대형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것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문제의 진원지는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다.

이 회사 건설 현장에서는 올해 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일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 1명이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검토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엄정한 행정제재를 주문했다. 특히 큰 사고 발생이 잦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해서는 건설업 면허 취소, 공공 입찰 참여 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이 산업재해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정부도 강력한 단속과 처벌에 힘을 싣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8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50일간 건설 현장에 대한 강력 단속을 실시한다.

이번 단속은 부실시공과 안전사고, 임금체불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 근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사 발주가 많은 △한국토지주택공사 △국가철도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교통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은 이번 단속에 함께 참여한다.

이상경 국토부 제1차관은 “정부는 이번 단속을 통해 불법 하도급이 적발된 업체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며 “이번 단속이 일회성 점검이나 보여주기식 조치로 그치지 않도록 단속 결과를 바탕으로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불법하도급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층 강화하는 규정을 관계 법령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사업주나 도급인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동시에 또는 1년 동안 3명 이상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최대 1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다수 시공 업체는 이 같은 강공 드라이브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는 사업주에 대한 강한 처벌과 단속 위주의 대책으로는 건설 현장의 사고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더욱이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능력이 대기업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대다수 중소기업의 경우 행정제재를 강화하더라도 징벌적 수준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안전관리에 몰두하게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품떼기’ 등 불법행위 여전

다수의 시공업체 경영자와 현장 관리자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근로자 사망을 비롯한 안전사고는 건설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발생한다. 시공업체 경영자나 현장 관리자가 안전관리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등의 단순한 이유로 사고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원도급과 하도급,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가격 위주의 낙찰자 선정 방식과 공기 단축 압박은 안전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사업장 환경을 만들고 있다.

더욱이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어렵게 일감을 따낸 하도급 업체는 적정 공사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모든 공사를 마쳐야 하는 엄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현장의 안전관리에 충분한 비용을 지출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시공 현장에 만연한 고질적인 불법 하도급도 심각하게 짚어야 할 문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원도급자로부터 공사를 하도급 받은 시공업체가 불법적인 이면계약으로 공사의 전체 또는 일부를 재하도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재하도급 업체의 경우 부족한 공사비를 만회하고 조금이라도 이윤을 내기 위해 ‘품떼기’ 같은 불법행위를 벌이기도 한다. 품떼기란 무면허, 무자격의 공종별 팀을 구성하고 있는 작업반장과 불법으로 계약을 맺고 인력을 제공받는 행위를 말한다. 이처럼 복잡하게 형성된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 중간 단계의 시공업체 또는 가공의 회사는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통해 실제 시공을 하지 않고도 부당한 이득을 챙기게 된다.

감리업체 간부로 시공 현장에서 20여 년간 감리 업무를 수행해 온 A씨는 “일부 현장에서는 ‘위장 직영’을 위해 하도급 업체를 건설사의 계열사로 조작하기도 한다”며 “정부가 불공정 하도급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건설 현장의 도급계약과 업무 위탁은 대기업과 대기업 관계사, 중견기업, 중소기업, 인력파견 용역업체로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며 “다단계 도급 과정에서 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빈틈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행 하도급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나 영세한 하도급 업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A씨는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공사 업체의 경비가 부족하고 촉박한 공기에 쫓기다 보면 각종 사고 발생의 위험이 높아진다”며 “시스템 개선에 대한 노력 없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닦달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만으로는 건설 현장의 사고 발생을 막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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