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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밥그릇보다 큰 숟가락
[기자수첩] 밥그릇보다 큰 숟가락
  • 서유덕 기자
  • 승인 2023.06.30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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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올해도 최저임금을 두고 노사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올해 적용 최저임금을 5.0%, 460원 인상한 9620원으로 결정할 때만 해도 조만간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이 경영계와 노동계를 아울러 나왔었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 협상 과정을 보면 ‘1만원 시대’를 우려했던 지난 시절이 무색하기 이를 데 없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협상에 나서기 전부터 내년도 최저임금이 최소 1만2000원은 돼야 한다는 주장을 밀어붙여 왔다. 그리고 지난달 21일 끝내 1만2210원의 최저임금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는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대비 무려 26.9%나 인상한 숫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55만1890원으로 올해 대비 54만1310원 많은 금액이다.

노동계는 “물가의 가파른 상승으로 실질 임금은 되레 줄었다”면서 “가족 부양을 책임지는 저임금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만2210원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비현실적인 요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장기간 경기 위축으로 현재의 최저임금조차 부담이 막대한 와중에 27%에 이르는 인상 규모는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달 22일 최저임금위 7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또한 업종에 따른 구분 없이 동일한 금액을 적용하기로 한 만큼, 가장 어려운 업종의 경영 여건을 고려해 최저임금 수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용자위원 측의 입장이다.

당초 사용자위원들은 업종별 차등적용을 이끌어내는 데 보다 중점을 두고 최저임금 협상에 임해 왔다. 체인화 편의점, 택시 운송업, 숙박·음식점업 등 특정 업종에서 현 최저임금조차 지급할 여력이 없을 만큼 경영난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위원들은 업종별 차등적용을 통해 최저임금 수용력을 개선함으로써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경영 정상화를 꾀하고자 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거스를 수 없다면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시행해 숨통을 트는 현실적인 방안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로자위원들은 “또 다른 갈등과 차별을 낳는다”며 차등적용 마저 반대했다.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경영상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 탓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노동계의 주장대로 현 기업 경영의 어려움이 최저임금 인상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 가파른 인상은 영세 사업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피부로 와닿는다. 지난해 국내 노동시장에서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9160원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수는 275만6000여명으로 최저임금 미만율은 12.7%에 달한다.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10%가 넘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도가 시장과 괴리돼있음을 방증한다.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하고 경기 위축이 지속하면서 기업의 밥그릇은 작아지고 있다. 반면, 큰 폭의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는 거세졌다.

그러나 밥그릇보다 큰 숟가락으로는 쌀 한 톨 제대로 떠먹을 수 없다. 이러다가는 노사 모두가 저성장의 굴레에 갇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양측은 소모적인 논쟁을 끊고 합리적인 합의를 이뤄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데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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