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대통령실은 국민으로부터 경제, 민생, 사회, 정치, 외교, 안보 등 국정 전반에 관한 질문과 의견을 받아 정책 입안에 참고하고자 24일 ‘국민사서함’을 개설했다.

이 국민사서함은 구글 폼(Google Forms) 기반으로 운영된다. 질문이나 의견을 남기고 싶은 국민은 구글 계정에 로그인하고 △이름 또는 닉네임 △연령대 △질문 분야 등 세 가지 항목에 답변한 후 대통령실에 자유롭게 질의를 남길 수 있다.

이 대국민 소통 창구가 제 기능을 할 것인지는 대통령실이 앞으로 얼마나 성실하게 운영하느냐에 달리겠지만, 우선은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국민 참여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단이 구글 폼이라는 점은 아쉽다. 인수인계 없이 출범한 새 정부가 국민의 참여를 빠르게 유도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친숙한 수단을 도입한다는 것은 이해하나, 중장기적으로 개인정보보호·보안이나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 면에서는 분명 우려되는 바가 있다.

최고위 정부 조직인 대통령실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에 보안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니 국민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ICT 경쟁력에는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ICT가 빠르게 발달하고 인공지능(AI)이 세계 경제와 산업에 뿌리 깊게 자리하는 최근 한편으로는 ‘디지털 주권’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각국은 자국의 디지털 자산들이 자칫 외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데이터·콘텐츠와 소프트웨어(SW)·플랫폼 등 첨단 ICT 역량에 크게 관여하는 디지털 자산을 외산에 의존하는 것은 사이버 안보와 기술 경쟁력을 취약하게 한다. 우리 국민이 해외의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익숙해지는 ‘락인(Lock-In) 효과’로 인해 국산 제품·서비스의 성장을 뒤처지게 만들기도 한다. ICT가 먹거리를 좌우할 미래에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외산이 항상 문제라는 지적은 아니다. ICT 융합 신사업·신서비스 창출이 시급한 상황에서 민·관을 가리지 않고 모든 영역에 국산 AI·SW만을 강제하다가는 되레 디지털·AI 전환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 인재 양성, 투자 활성화, 국민 인식 전환 등 ICT 생태계 육성에 고품질의 외산 AI·SW가 순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고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정부 행정의 외산 종속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기술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외국으로의 기술력·정보력 유출을 방지하며 자주적인 국정 운영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중요 기능의 국산화는 필요하다.

더군다나 새 정부는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우리 제도·문화·역사·가치관에 걸맞은 AI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소버린 AI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나라의 경제·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AI를 독립적·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보호하며 진흥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여러 번의 대국민 메시지와 조직 개편 및 인선을 통해 디지털·AI 전환에 국가 역량을 대대적으로 집중할 뜻을 드러내고 있다. 자생력을 갖춘, 자주적인 ICT 생태계를 육성하고 미래 경쟁력의 기틀을 견고하게 다지려면 정보통신·디지털 분야에서 균형 있는 국정 운영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이제 첫발을 디딘 국민사서함 또한 과도기를 거치고 안정적인 체계를 갖춰 나가 대국민 소통과 참여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정보통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