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신문=김연균기자]
최근 만난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관계자의 하소연을 듣자하니 답답함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업계의 고질적인 구조에서 비롯된 하도급대금 지급 지연 관행 때문인데, 중소 업체들만 죽을 맛이란다. 이게 어디 설계사무소만의 일이랴.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건설사 중 8곳이 하도급대금을 법정 기한인 60일 내에 지급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건설사에 시정명령을 내린 건수는 376건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된 미지급액은 244억5000만원에 달한다.
하도급대금 미지급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발주자의 자금난을 비롯해 계약서 미비, 공사 품질 및 일정 관련 분쟁, 그리고 원청사에서 하도급사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지급 지연 등 다양하다.
하도급대금 미지급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한 만큼 제때 대금이 지급되지 않다보니 연쇄적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앞선 관계자는 “분양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설계비 지급을 늦추거나 자금 유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금만 참아달라는 등 발주자, 원청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운다”며 “건설 경기 자체가 침체된 점은 업계 모두가 알지만 지속적인 하도급대금 미지급은 중소 하도급사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2·3차 하위 협력사로 연쇄적인 피해로 확산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더해 ‘산재와의 전쟁’으로 안전 관련 비용을 더 확보하고, 더 투자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격’이다. 현장 근로자의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나, 제재와 처벌이 강화되다보니 숨쉴 여력이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여러 해법들을 담아냈지만, 업계의 시선은 제재 수단에만 쏠려 있다.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을 비롯해 ‘동시 2명 이상 사망’에 ‘연간 다수 사망’을 추가한 영업정지 요청 요건 완화 등은 기업들의 반발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또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회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등록말소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도 신설될 예정이라, 기업들의 숨통은 더 조여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 한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근로자 안전 확보는 충분한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 데서 나오고, 안전관리 비용과 공기를 보장해주면 사고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의존도가 큰 건설업계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조치도 불만의 대상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단 1명이라도 사망하면 3년동안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못하게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경영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업계의 발목을 잡아 결국 공기가 길어지고, 건설비가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정부는 건설업의 구조적 문제점 해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영 트랜드인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견고한 건설생산기반의 구축이 요구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견고한 생산기반의 구축은 건설생산물의 기획 및 계획, 설계, 시공, 관리, 해체 등 일련의 과정을 담당하는 성실하고 합법적인 업체를 육성하고, 관련된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유능한 인력이 체계적으로 육성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현장의 안전을 위해 기업들의 목만 조를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체계적인 예방이 가능한 테두리를 만들어주는게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을까 고민해본다.
